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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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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탈’바꿈- 유희선(시인)

  • 기사입력 : 2018-03-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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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코핀, 자코핀, 이름도 모습도 낯선 자코핀비둘기를 떠올린다. 자코핀비둘기를 본 것은 작년 늦가을 ‘장사도 해양공원 카멜리아’에서였다. 그 새의 이름에 비둘기라는 명칭이 없었다면, 희귀새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짙은 와인색 털 코트에 깃을 잔뜩 세운 모습이 몹시 낯설면서도 귀티가 났다. 외투에 파묻힌 작고 하얀 얼굴, 눈을 마주친 몇 초의 순간은 섬을 빠져나오고서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코핀’이란 이름은 장사도가 해양공원으로 조성될 때, 동백나무를 지칭하는 ‘카멜리아’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것과 다르지 않다. 섬이나 비둘기나 사람 손을 타면서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비둘기는 수천 년간 인류와 함께 한 동물이다. 중동 지역의 야생 바위비둘기를 사육하면서 중요한 식량이 되었으며 귀소능력이 뛰어나 통신용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관상용으로 변신되었다.

    다윈(1809~1882)은 애완동물로서 가장 인기 있던 비둘기를 통해 진화론의 가설을 입증하고자 했다. 관상용 비둘기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면서 다른 조류에 비해 많은 교배가 이루어졌다. 당시 교배기술은 정점으로 치달아 어떤 날개라도 3년이면 만들고, 원하는 모양의 머리와 부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6년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했을 정도였다. 자연 상태에서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던 진화의 축소판이었다. 마치 늑대가 자연적 선택으로 개가 되는 과정이 최소 450만 년이 걸렸던 것에 반해, 현재 개 품종은 불과 150여 년 사이에 만들어낸 것과 같다.

    자코핀비둘기에게 눈길이 갔던 것도 그 특별한 생김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새장을 단순히 새의 감옥이라고 느끼는 나의 오래된 습성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자유가 박탈당했다는 천편일률적이고 참 쉬운 연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코핀비둘기는 철저한 관상용이다. 따라서 인공공원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잘 선택된 것이다. 새의 날개를 돌려주고 싶은 원초적 연민보다는 철저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장사도라는 섬 또한 같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생소한 터전 구석구석에 뿌리를 내리게 된 새로운 생명들은 막대한 책임감과 정성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탈’은 어쩌면 ‘인간의 탈’을 쓰면서부터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세상 또한 그 여파로 인해 급속도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탈났다’고 표현할 때와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덮어 쓴 ‘탈’은 제 역에 충실할 때 낭패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글을 쓰게 되면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단 하나의 유전자도 변하지 않았지만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위적 소산이다. 수없는 실패와 단련으로만 자연과 흡사한 창작품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이미 손을 탄 것은 손이 닿지 않을 때 순식간에 흉물로 변하거나 멸종되기 마련이다.

    ‘장사도 해양공원 카멜리아’ 는 꿈과 열정으로 가꿔진 아름다운 섬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거대한 분재처럼 사람 손길을 목말라할 것이다. 자코핀비둘기도 그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닷가에서 짝을 부르는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꾹꾸르르 루르 꾹꾸 꾹구.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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