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미만 붙여주면 타고 싶은 게 불이다.
고단한 춤사위를 마악 접어가다가도
볼품없는 삭정이 몇 개비만 더해주면
죄악처럼 달은 몸을 내던지는 게 불이다.
한낱 검은 재의 허망함에 움츠려
길들여진 일상에나 덜미 잡힌 눈들 앞에
보란 듯이 단내로 타버리는 유혹이다.
불씨가 남았을 때 불은 아직 축복이다.
지상을 덮어오는 매운 눈발에나 기대어
불러볼 누구도 없이 적막에 떨고 선 날
자꾸만 뒤돌아보는 저문 그리움이다.
☞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화재사고가 많이 발생했던 것 같다. 동장군이 얼음회초리를 마구 휘두르는 듯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회오리치는 불길을 보면 동장군과 불이 맞붙어 쥐어뜯고 싸우는 형상 같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오롯이 상처받는 건 사람이니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물론 이 시 속의 불은 그 불이 아니다. ‘볼품없는 삭정이 몇 개비만 더해주면/ 죄악처럼 달은 몸을 내던지는’ 불의 속성에 빗대어 ‘빌미만 붙여주면 타고 싶’지만 ‘불러볼 누구도 없이 적막에 떨고 선’ 사람의 제풀에 사그라지는 불씨(열정)를 애도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별가가 될 것이다.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