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다음에 술 한잔 사겠소- 송미선(시인)

  • 기사입력 : 2018-03-02 07:00:00
  •   
  • 메인이미지


    겨울 가뭄이 유난히 심해 나라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은 캠페인을 통해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큰 산불을 만듭니다. 여러분이 산불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라는 호소문을 발송할 만큼 겨울 가뭄에 몸살을 앓았다. 다행스럽게도 기다리던 비가 제때에 내려서 봄이 성큼 다가서는 느낌이다. 산불로 잿더미가 된 헐벗은 산에도 봄비가 적셔주어 머지않아 새싹이 돋을 것이다.

    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봄비처럼, 누구나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로 소리 없이 번지는 미소 하나쯤은 갖고 있다.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하늘 한 번 바라보며 그 일을 떠올려 본다.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남편과 고성에 일이 있어 다녀오던 중 바다가 눈 아래로 펼쳐져 있는 무학산 산복도로를 지나갈 때였다. 때마침 삼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춰 섰는데, 언제 왔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폐지를 수북이 실은 리어카가 우리 옆에 섰다.

    얼른 봐도 칠순은 넘은 노인이었다.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리어카가 노인을 이끌고 있는 듯 보였다. 벙거지를 푹 눌러 썼기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산중턱 고갯마루였기에 몸의 몇 배도 넘는 짐수레를 끌었기에 힘겨워 보였다. 신호를 기다리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노인의 힘든 한숨만큼 깊게 느껴졌다.

    나는 옆을 쳐다보는 대신 앞쪽을 응시했다. 몇 초쯤 지났을까.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호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냈다. 차 유리창을 내리더니 “더운데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하세요” 하며 지폐를 노인에게 건넸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흘끗 보던 노인의 깊게 파인 주름이 벙거지 아래로 보였다. 면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지폐를 받았다. 잠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에 술 한잔 사겠소”라고 답했다.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호가 바뀌었고 우리는 마땅한 대답도 못하고 출발했다.

    지금도 고성에 다녀올 때마다 무학산 산복도로를 이용한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그 노인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언제 함께 술 한잔 하지?’하며 노인을 떠올리면, 소주 두어 잔 마신 듯 속이 뜨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에 술 한잔’이라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오랫동안 마음 깊숙이 살아있다.

    우리는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동수단으로뿐만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길 위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어제도 오늘이었고 내일도 오늘일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현재란 과거와 미래로 연결되는 중간 어디쯤이 아니라 찢어지는 출발점 혹은 소멸점이 현재라 했다.

    오늘을 위해 어제를 참고 견뎠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자신만의 하루살이 지도를 그린다. 삶은 우리에게 곁길이나 곁가지를 허용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반질해질 대로 반질대는 길만 제시한다. 겨우 자신의 몸에 맞는 길을 찾았을 때도 그 길이 거칠거나 좁고 꺾어진 길이라면 한사코 가지 말라고 말린다.

    곧은길을 걸으면서도 길을 잃어버린 듯 두리번거리며 걷기도 하고, 갈림길에 서 있는 것처럼 머뭇거릴 때가 있다. 누구도 고개 끄덕여주지 않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자신을 격려하며 발길을 내딛는다. 끝이 없는 끝을 찾아 나서는 나에게 ‘다음에 술 한잔 사겠소’라며 말을 건네 본다.

    송미선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