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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는가- 이기영 (시인)

  • 기사입력 : 2018-0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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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비공식적으로 시인의 연봉이 100만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달 월급도 아닌 1년 연봉이라면 시만 쓰는 전업 작가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 시인이 20만명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6만명쯤 될 것이라고 한다. 20만명이든 6만명이든 시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시인이 많은 나라가 됐을까. 돈도 안 되고 명예는 더더욱 없는데, 누가 요즘 시인을 알아준단 말인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하늘에 별이 떴는지 달이 떴는지 관심 둘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의 고달픈 생활에 시가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시를 쓰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건 그만큼 무언가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사람들, 돈도 안 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잘 썼다고 칭찬해주지 않아도 내 만족 때문에 살풀이하듯이 시를 쓰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소외받고 서러운 시간들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혼자만의 넋두리로 시를 써서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면, 시가 돈이 되거나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많은 밤과 고통을 바꿀 만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인공지능기술 및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융합을 통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제품과 서비스가 지능화되면서 경제 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언급되면서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 시대를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컴퓨터·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혁명(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혁명으로도 일컬어진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초연결, 초지능의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기계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도 시를 쓸 때의 비유나 상징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순수 서정의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해 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동물이나 식물도 감정이 있지만 인간처럼 오욕칠정의 섬세한 감정까지는 교감하지 못한다. 인간만이 슬픔이나 기쁨, 분노, 절망과 희망을 빗대어 시로 쓰고 서로 공감하는 것이다.

    현재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어떻게 수술할 것인지 의견을 내고 최첨단 로봇이 수술실까지 들어가 있는 상태다. 앞으로는 법관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판례대로 판결을 내리면 유전무죄의 논란도 없고 판사나 검사의 자질을 문제 삼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인공지능의 사물 빅데이터를 만든다 해도 시인의 정서를 대변할 수 없다. 다른 직업은 다 사라져도 시인만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단의 성폭력 사건들로 인해 어수선한 요즈음 시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권력화된 작가들로 인해 또 다른 다수가 한꺼번에 평가 절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시인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알아주었으면 한다. 밥이 되고 술이 되고 돈이 되는 건 아니어도 아픈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한 줄의 시가 이 세상에 온기로 남기를 바란다.

    이기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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