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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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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14) 사천 다솔사

최치원서 한용운까지 ‘천년 역사’ 품은 고찰

  • 기사입력 : 2017-11-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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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에 쫓겨 독서의 계절 혹은 사색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을 채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더위와 추위 사이에 얼굴을 들이미는 가을은 짧기에 애틋하기까지 하다. 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만추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11월 중순이 돼야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사천 다솔사다. 자연이 고운 색을 빚어 펼쳐놓은 천년고찰인 이곳을 누비면 몸과 마음이 절로 편해져 상추객(賞秋客)들이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려 찾는 곳이다.

    사천 곤명면 봉명산에 천 번째 가을이 내려앉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은 보는 이에게 ‘눈호강’을 선사한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이곳은 세월만큼 구석구석 곡진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3000년에 한 번 꽃피운다는 우담바라가 핀 영험한 곳이고, 일제강점기 당시 만해 한용운과 효당 최범술 등이 만당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은거지 역할을 했다. 다솔사를 품고 있는 봉명산 자락의 차밭을 터전 삼아 우리나라 차 문화의 대중화를 이끈 곳이기도 하다. 세월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찾아 가을이 끝나기 전 사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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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에 자리 잡은 다솔사./성승건 기자/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는 이름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높다란 소나무 군사들의 안내에 따라 쉬엄쉬엄 숲을 오르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 주차장을 경계로 위로는 신라고찰 산사를, 아래로는 전설이 깃든 숲을 만날 수 있다.

    먼저 108개 계단을 올라 사찰에 들어서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대양루가 고단함을 달랜다. 1749년에 건립된 이 누각은 정면 5칸에 측면 4칸, 건물 길이 13m에 이르는 맞배지붕 2층 건물로 내부에 받침기둥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채 건물 가운데 10m가 넘는 대들보 하나만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다솔사의 속내를 이야기해줄 배시남 문화해설사가 대양루에 있는 안내표지판 앞에서 멈춰 섰다. 배 해설사는 “표지판엔 신라 지증왕 4년(503) 인도의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해 ‘영악사’라 불리다가 선덕여왕 5년(636)에 이르러 지금의 다솔사로 개칭했다고 적혀 있지만 당시엔 다솔사가 아니라 ‘타솔사’로 불렸다”며 오기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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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내 차전시관.



    이어 그는 다솔사가 이름난 배경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 덕이 크다고 했다. 이곳은 다른 절의 대웅전 격이지만 불상이 없다. 부처의 몸인 진신사리가 있는 곳이어서다. 지난 1978년에 대웅전 삼존불상에 금칠을 하는 개금불사 중 후불탱화 속에서 사리가 발견되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바꿨다. 배 해설사는 “간혹 누워 있는 불상인 와불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와불은 부처가 생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것은 부처가 열반에 든 이후를 새긴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면 나무 조각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사찰엔 적멸보궁을 중앙으로 응진전과 극락전, 명부전 등의 전각과 선당, 승당 등 10여 채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봉명산의 차 역사는 깊다. 신라시대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를 갖고 와 지리산 자락에 전파할 무렵부터 이어온 사찰 뒤편 차밭엔 200~300년쯤 묵었다는 차나무들이 즐비하다. 제멋대로 자란 야생 차나무를 효당 스님이 손을 봤지만 여전히 얼기설기 심어져 보성이나 제주 차밭같이 정갈한 모습은 보기 어렵다. 하지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시작된 차 이야기는 적멸보궁과 마주한 차전시관에 일목요연하게 설명돼 있다. 밝은 달로 촛불 삼고 벗을 삼으며/흰 구름으로 자리 펴고 병풍도 친다/대 바람 물결 소리 다 함께 소솔하니/맑고 찬 기운 뼈 속에 스며 심간을 깨워주네/오직 흰 구름 밝은 달을 손님으로 맞았으니/도인의 자리가 이만하면 충분타네 -초의선사 ‘밝은 달은 촛불이자 벗이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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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다사(茶寺)라 불리는 다솔사답게 차와 관련된 시가 한쪽 벽을 장식하며 오가는 손의 발을 붙잡는다. 차 역사와 자장법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최치원 등 거쳐간 인물의 에피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가 내걸려 있다. 뿐만 아니라 차기의 전시와 다솔사에서 주관하는 차 축제의 내용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쪽 끝엔 2001년 전설 속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해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큰 북도 보관돼 있다. 지금은 전시장 용도로 쓰이지만 예전엔 승려교육이나 법회, 강연장 등으로 활용돼 역사적인 의의가 깊은 곳이다. 해방 전에는 민족 교육도장으로 쓰였고 혼탁했던 해방 후에는 청년교육장이 되기도 했다. 건물 기둥마다 네모반듯한 홈이 보이는데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피란 온 동흥중학교가 4년간 교실로 쓰면서 칠판을 걸었던 흔적이다.

    경내에 역사가 묻은 공간은 또 있다. 문학의 산실, 항일운동 기지로 평가받는 안심료다. 이곳은 한용운이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고 소설가 김동리가 문학 열정을 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효당 최범술이 현대 다도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며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 두루 거쳐간 요사채이기도 하다. 배 해설사는 “김동리 선생이 한용운, 김범부가 분신공양을 한 승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등신불’의 소재를 얻었다”며 “툇마루 맞은편 안마당에 서 있는 황금편백나무 세 그루는 한용운 선생의 회갑을 기념해 심었으니 벌써 70년이 훌쩍 넘어 국내 황금편백나무 중에 가장 오래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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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산실이자 항일운동 기지로 평가받는 안심료.



    운이 좋으면 효당 선생이 만든 ‘반야로’에 쓰인 찻잎을 덖던 아궁이가 있는 부엌도 구경할 수 있다. 불교에서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에다 ‘이슬 로(露)’를 합친 반야로 차를 덖을 땐 적어도 세 명이 필요하다. 크지 않은 가마솥에 손이 많이 필요한 이유는 온도가 너무 높지 않도록 불 조절하는 정성과 균일하게 덖을 수 있도록 골고루 섞어줘야 하기 때문이란다.

    다솔사는 차 애호가뿐 아니라 풍수에 관심 있는 이들도 많이 찾는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장군대좌혈의 명당으로 손꼽혀서다. 이를 증명하듯 다솔사로 향하는 길에 ‘어금혈 봉표(御禁穴 封標)’라고 적힌 큰 돌이 있다. 고종 때 이곳이 풍수가 좋아 묘를 쓰려는 이가 나타나가 지역민이 반대 상소를 올려 임금이 ‘어명으로 다솔사에 묫자리를 금지한다’는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보다 더 오래전인 세종과 단종의 태실이 있었던 은사마을 태실지가 이 인근에 있었음도 같은 연유에서다. 왕의 어태를 안치할 태실도감을 설치하고 전국에서 길지를 찾다가 소곡산 자락을 태실지로 정했을 만큼 기운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 태실을 경기도 양주시로 이전한 탓에 지금은 석물 일부와 흔적만 남아 있지만 사천시가 정비에 나서 경남도기념물 제30호와 31호로 각각 지정돼 있다. 이 밖에도 신라 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신선과 노닐며 시를 지었다는 바위와 만지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장군바위, 딱따구리가 쪼으면 스님이 목탁치는 소리가 난다는, 고사한 지 100년 된 나무 등 눈 닿는 곳곳이 전설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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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해설사는 다솔사는 가을을 늦게까지 붙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군립공원이어서 입장료가 없는 데다 보안암 석굴 등 귀한 유물을 품고 있어 단풍구경 삼아 가볍게 나들이하기 제격이다”고 말했다. 일주문과 천왕문 등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볼거리가 더 풍성해질 예정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땐 천년고찰의 명성에 비하면 규모와 건물들이 다소 소박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찬찬히 그리고 성심성의껏 바라보면 지리산 끝자락인 봉명산이 그 깊이를 채워주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곳이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다솔사에서 마침내 마음에 가을이 물들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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