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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릴케와 고독과 포구나무 한 그루- 김형엽(시인)

  • 기사입력 : 2017-11-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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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마다 낙엽이 뒹굴고 있다. 내게 무어라 할 말이 있다는 듯 원을 그리다 말고 쪼르르 어디론가 달려가는 낙엽들을 보며 릴케의 시 ‘가을날’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 본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릴케가 말한 ‘지금 혼자인 사람’은 다름 아닌 고독을 자처한 사람이다. ‘고독은 비와도 같다’고 한 릴케는 그의 대표작,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등 많은 작품에서 고독의 의미와 중요성을 노래한 바 있는데, 이 가을, 나는 릴케와 함께 릴케의 삶과 문학을 사랑한 또 한 분을 떠올린다. 바로 몇 년 전, 고성에서 영면하신 고 김열규 교수님이시다. 오랫동안 교수님을 멀리서나마 존경했던 한 사람으로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을 자주 떠올린다. 대학 시절, 강의 시간에는 한국문학과 신화와 설화, 그리고 민속학에 관한 말씀을 두루 하셨지만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돼 찾아갔을 때는 ‘고독’에 관한 말씀을 자주 들려주시곤 했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이기에 오히려 보람 있는 시간으로, 뜻깊고 값진 상황이 되도록 잘 지켜내야 한다. 홀로가 아니면 못다 이룬 것이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되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정체를 에누리 없이 짚어내게 된다. 고독 속에 있을 때만이 자기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라며 늘 고독과 벗할 것을 당부하셨다.

    지난 시월은 고 김열규 교수님의 4주기였다. 추모의 마음으로 교수님의 유작인 ‘아흔 즈음에’를 읽고 고성으로 차를 몰았다. 먼저, 교수님의 흉상을 볼 수 있는 고성박물관을 찾았다. 고성박물관 북카페 한쪽에는 ‘한국을 품은 인문학자, 김열규’라는 머리글과 함께 교수님의 연보와 생전에 펴낸 수십 권의 저서를 만날 수 있다. 교수님이 남긴 업적에 비해 제대로 된 전시공간이 없어 매번 아쉬웠지만 삶이 늘 간결하기를 바라셨던 교수님은 이것마저도 번잡하다며 반색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고성박물관을 나와 자란만이 펼쳐진 하일면 송천마을에 다시 차를 세웠다. 그곳에는 20미터 넘게 높이 솟구쳐 하늘을 찌르고 있는 노거수 한 그루가 있다. 바로 교수님께서 생전에 무척 사랑하셨던 포구나무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보다 서둘러 잎이 졌는지 우람한 가지로만 서 있는 나무에서 나는 엄격했지만 소년처럼 맑고 따뜻했던 교수님의 미소를 느낀다. 그 자체로 하나의 어엿한 세계이고 독립왕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포구나무. 당신 스스로도 그런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고도 하셨다.

    속절없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바깥으로 돌렸던 시선을 점점 내 안으로 옮겨 앉히며 나의 내면 또한 조금 더 깊어지기를 기도해 보는 시간이다. 하여, 기꺼이 고독이라는 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아도 좋을 이 계절에 한국학의 거장, 고 김열규 교수님을 먼저 우리 지역에서부터 회고해보는 시간이 못내 절실하게 느껴진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붙잡고 있었던 우리 문학과 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쉬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송천마을 어귀의 포구나무를 가만히 우러러 본다. 이제 고독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느냐고 포구나무는 내게 나직이 물어오는 듯하다.

    김형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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