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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빈 들에 서서- 정정화(소설가)

  • 기사입력 : 2017-1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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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한 연인이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는 계절, 한가을이다. 한층 높푸른 하늘 위로 고적운이 운치를 더한다. 찬 서리가 배춧잎을 하얗게 뒤덮을 때면 나무의 잎사귀들이 어느새 울긋불긋하다. 봄꽃보다 고운 단풍이 붉게 타오를 때 농민들은 막바지 벼 수확에 여념이 없다. 그 흔한 단풍놀이는커녕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할 실정이다. 벼 그루터기가 뾰쪽한 빈 들에 서면 자루 가득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이 즐겁지만은 않다.

    정부가 귀농 정책을 펼친 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벼 수확기가 되면 콤바인 있는 집에 타작을 부탁하기 위해 줄을 선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노인, 보행보조기를 끄는 노인, 허리가 90도로 굽은 노인, 하나같이 힘없는 노인들이다. 비라도 오면 순서가 한없이 뒤로 밀리고, 사정상 끼워 넣기라도 하면 육두문자가 들어가는 입씨름이 붙기도 한다. 요즘 농촌에는 노인이 농사 짓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웃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농사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써레질하기, 모내기, 비료 치기, 농약 치기, 탈곡하기, 짚 묶는 곤포기 작업에 이르기까지 일을 맡기는 비용을 지급하고 나면 얼마만큼의 이익이 있을까, 게다가 농약 등 부대비용까지 더하면 얼마간 남기라도 할까, 의구심이 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쌀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 그나마도 다 수매를 해주지 않아서 애를 태운다. 다행히 올해는 공공비축미 산물 벼 수매량을 작년보다 8000t 늘려 9만t, 포대 단위로는 27만t을 매입한다고 한다.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은 수확기 산지 쌀값을 반영해 내년 1월 중 확정되며, 올해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예년과 달리 우선 지급금을 주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우선 지급금이 쌀값 하락을 주도하기 때문에 이런 대안이 나온 것이다.

    이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젊은이가 벼농사에 뛰어드는 일이 드물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벼농사를 지어 논도 사고, 자식 교육도 시켰다는데 지금은 현상 유지조차 힘든 실정이 아닌가 싶다.

    현대인들은 세 끼 꼬박꼬박 밥을 먹는 경우가 드물다. “밥심으로 산다”고 한 말이 옛말이 되었다. 한 끼 식사를 빵이나 면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음식 문화도 많이 바뀌어 쌀 소비량이 더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주식을 수입에 의존할 순 없다. 수입에 의존하다 보면 수출국 가격이 언제든지 오를 수 있어 식량이 무기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가격보다 한참 떨어진 쌀값.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그동안 지어왔으니 습관적으로 짓는 벼농사가 아니라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좋겠다.

    청년들이 귀농해서 농사를 새로 시작해도 희망이 있는 농촌, 젊은 농촌이 돼야 하지 않을까? 당장의 이익보다 후손들의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를 위해 긴 안목의 대책이 필요하리라 본다. 기능성 쌀이라든지, 쌀국수, 쌀케이크, 쌀과자, 쌀막걸리 등 지금도 쌀을 이용한 많은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하게 쌀이 소비되는 방법을 연구해 미래의 먹거리로도 각광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농촌의 앞날을 위한 우리 쌀 지킴이 역할에 정부와 개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금방 퍼서 김이 오르는 밥에 김치 한 조각 얹어서 먹는 맛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정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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