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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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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슬픔은 안녕하신가?- 문저온(시인)

  • 기사입력 : 2017-10-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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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을 다녀온다. 당신은 영정 사진으로 웃는 얼굴을 택하겠는가, 근엄한 표정을 택하겠는가? 나는 향을 피우고 재배를 하겠는가, 국화를 바치고 묵념을 하겠는가? 육개장과 시락국과 재첩국은 어떤가?

    부의함은 각진 위엄으로 자리를 지킨다. 장례지도사는 지휘자처럼 구령을 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는 게 없구나…. 일괄 대여해 입은 상복을 본다. 팔뚝에 찬 삼베와 국적 없는 검은 치마저고리를 본다. 머리에 꽂은 흰 리본핀을 본다. 재바르게 상을 차리고 걷는 도우미를 본다. 유족들은 봉분 없는 평장을 택했다. 대세라고 한다. 아파 죽은 사람은 봉분을 하는 게 아니라고 누가 아는 체를 한다. 수목장은 아직 이르지? 그렇게들 한다. 그렇게들 해왔다. 그렇게 바뀔 것이다. 뒤섞이면서. 다들 하는 대로. 죽음도 슬픔도 온전한 내 것은 없다. 내 것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너를 보낸다. 보내는 들판은 마른 들판. 돌아선 네 등이 살빛 낮달 걸린 하늘 아래 있는 들판이다. 낮달처럼 나는 등이 휜다. 심장을 향해 내가 구부러진다. 등이 휜다는 것은 심장과 간장을 온몸으로 감싸 쥐는 일이다. 등 위의 하늘과 낮달과 바람을 견디는 일이다. 천천히 휘어서 나중에는 아치형 다리처럼 네 발로 땅을 짚는 일이다. 삶은 나를 올라탔다. 발목에, 허리에, 목을 감고 매달렸던 삶은 이제 등을 올라탔다. 탔을 뿐인데, 나는 내 버팀의 중심을 옮겨야 하나보다.

    낙타의 목을 가지지 못해서 나는 땅을 본다. 발끝을 본다. 낮달과 하늘이 천천히 떨어져 쌓일 것 같은 지상을 본다. 숨에서 나는 단내. 코끝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 낙엽 한 장, 바람 한 입김만 더 얹혀도 등은 그대로 무너질 것 같다. 등은 그걸 알고 있다.



    낙타는 전생부터 지 죽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두 개의 무덤을 지고 다닌다/ 고통조차 육신의 일부라는 듯/ 육신의 정상에/ 고통의 비계살을 지고 다닌다/ 전생부터 세상을 알아차렸다는 듯/ 안 봐도 안다는 듯/ 긴 속눈썹을 달고 다니므로/ 오아시스에 몸을 담가 물이 넘쳐흘러도/ 낙타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는다/ 전생부터 지 수고를 알아차렸다는 듯/ 고통 받지 않기를 포기했다는 듯/ 가능한 한 가느다란 장딴지를 달고 다닌다/ 짐이 쌓여 고개가 숙여질수록 자기 자신과 마주치고/ 짐이 더욱 쌓여 고개가 푹 숙여질수록 가랑이 사이로 거꾸로 보이는 세상/ 오 그러다가 고꾸라진다/ 과적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최후로 덧보태진, 그까짓, 비단 한 필 때문이라는 듯/ 고꾸라져도 되는 걸 낙타는/ 이 악물고 무너져버린다/ 죽어서도/ 관 속에 두 개의 무덤을 지고 들어간다.

    ―김중식,‘완전무장’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나는 서 있다. 등이 휠 것 같은, 읊조리며 서 있다. 휠 것 같은, 이라고 발음하면 휘파람이 태어나다 사그라진다. 그 빈자리로 팍팍한 혀끝의 세 음절이 먼 어디도 먼 내일도 아닌 지금 여기를 꺼칠하게 만지게 해준다. 휘어버린, 이 아니라서 다행인가.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찬바람처럼 긁고 가는 가수의 목소리여.

    슬픔에도 예식이 필요하여 가슴 한쪽에 말의 제단을 쌓고, 너의 장례식장에 나는 호적 없는 상주처럼 서 있다.

    문저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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