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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신발을 신겨주는 사람 - 김형엽 (시인)

  • 기사입력 : 2017-10-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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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날 아침 현관 앞은 신발로 가득하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도 있지만 몇 켤레는 뒤집혀 있거나 흐트러져 있어 더욱 정겹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현관 앞에 흐트러진 신발을 보는 날은 흔하다. 밖에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놓인 신발을 보며 식구들의 고단한 하루 일과를 짐작해 보기도 하고 신발짝을 찾아 가지런히 놓을 때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듯, 가쁜 숨을 고르듯 차분해지는 마음을 누구나 느껴보았을 것이다.

    차례가 끝나고 점심 무렵이 되자, 현관 앞은 찾아오는 친척들의 신발로 빈틈이 없다. 누군가의 신발을 밟지 않고는 내 신발을 단번에 찾아 신기란 어렵다. 점심상을 차리기 위해 분주히 안과 밖을 오가야 하는 상황. 4살배기 조카가 현관 문턱에 앉아 있고 11살 먹은 조카가 현관 신발들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사촌동생에게 신발을 신기기 위해 앙다문 목련송이같이 작은 동생의 발을 잡고 요리조리 끼워 맞추는 모습이 여간 기특해 보이는 게 아니다. 형이 동생에게 신발 한 켤레를 신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나는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모습을 뭉클한 마음으로 가만히 지켜본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 그래 우리 모두는 한때 저 아이처럼 누군가의 신발을 신겨주는 사람이었구나. 가장 공손한 손짓으로 내 몸을 둥글게 낮추기도 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가.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내 신발의 위치와 방향만 생각하는 사람으로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어린 두 조카 앞에서 살짝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최근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기사가 있다. 장애인학생 특수학교 건립을 두고 학부모측과 지역민의 갈등이 불거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다. 비단 특수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역마다 추진되고 있는 공공, 복지시설들이 이를 ‘기피시설’로 보는 지역주민과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다. 요양시설에는 ‘치매 노인들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청년임대주택엔 ‘청년들의 연애하는 모습이 자녀교육에 좋지 못한 데다 주차난까지 심각해진다’는 이유로 주민들과의 합의를 쉽게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소통이 아닌 이기심으로 뭉친 소동으로 끝나거나 억측과 혐오를 앞세워 무조건 반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저기서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있고 백세 시대에 걸맞은 복지정책을 꿈꾸고 있다. 금방이라도 선진복지국가가 실현될 것처럼 얘기하지만 우리들의 복지의식은 여전히 낮고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언제까지 우리 동네엔 안 된다. 내 집 뒷마당은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울 것인가. 조금씩 양보하고 지지해주며 공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4살배기 동생에게 신발을 신겨주기 위해 무릎을 꿇고 신발 속 빈 틈을 찾아 요리조리 궁리를 하듯 우리 모두는 한때 신발을 신겨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누군가에게 신발을 신겨 줄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흩어진 신발짝을 찾아 가지런히 놓아줄 수 있는 마음이라도 있다면 님비현상으로 인해 타인의 걸음을 휘청거리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꼭 필요한 신발 한 켤레 놓일 자리를 내치기보다 나와 당신의 신발이 가지런히 함께 놓일 수 있는 자리가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게 신발을 신겨줄 수 있는 마음의 온기를 가지고 있는가.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신발 속 냉기가 더욱 체감되는 계절이다.

    김형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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