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가명·12)는 한여름에도 후드티를 입는다. 하루 종일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귀와 목, 턱을 보이기 싫어서다. 옷에 가려져 있어 눈치채지 못하지만, 정우는 상반신 대부분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살고 있다. 또래보다 가녀린 몸에 화상으로 얼룩덜룩한 피부. 지난 6년간 끊이지 않았던 수술. 이것만으로도 정우의 유년은 충분히 힘겹다.
정우가 화상을 입은 건 5살 무렵,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여동생 정연 (가명·10)이와 방에서 놀던 어느 겨울 날이었다. 라이터를 만지작대며 장난을 친 것이 화근이었다. 불은 두꺼운 겨울 옷을 타고 온몸에 순식간에 올라붙었고, 뜨거운 불길에 집 대문을 박차고 나온 정우를 이웃이 발견하면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정우가 병원에 실려가 갖은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했을 때,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정우와 엄마가 통합사례관리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후 고통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성장해 가는 정우의 뼈대나 장기에 맞춰 피부가 수축·이완되지 못하면서 살이 당기고 아픈 고통을 24시간 내내 겪고 있다.
한 번 손상된 피부는 되돌릴 수 없어 성장을 멈출 때까지 수술을 통해 피부를 이식하는 방법밖엔 뾰족한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사회단체 등의 후원을 받아 고비를 넘겨왔지만 더는 수술비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
거기다가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에 엄마는 억장이 무너진다. “의료진들이 그러더라고요. 사춘기가 오면 부쩍부쩍 자랄 텐데 수술은 더 잦아질 거다, 그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요.”
아픈 아이를 위해서라면 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정우 엄마에게 남편은 삶의 조력자가 아닌 훼방꾼이다. 한때 단란했던 가정을 꾸려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남편이 투자한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뒤 정우가 사고마저 당하자 가족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편은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불 같은 화는 정우가 사고를 당하고부터 분노조절장애로까지 이어졌다. 폭력과 폭언을 견디지 못해 지금은 따로 살고 있지만 수시로 찾아와 세간을 부수고 정우 엄마에게 손을 댄다. “아이들은 제 아빠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해요. 경찰이 출동한 게 몇 번인지 셀 수가 없어요. 마음으로도 기댈 수 없고 금전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 이제는 이혼하고 싶어요.”
동생 정연이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다. 3살 무렵 오빠 몸에 불이 붙는 충격적 장면을 목격한 뒤부터 정연이는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오직 오빠 정우와 붙어다닐 뿐 친구를 만들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우에게는 피부 이식과 성형수술을 위한 수술비, 정연이에게는 심리치료를 위한 도움, 정우 엄마에게는 마음놓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생활비가 절실하다.
서옥희 통합사례관리사는 “적절한 치료만 동반된다면 충분히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갈 수 있는 가족”이라고 말했다.글·사진= 김유경 기자
※ 도움 주실 분 계좌= 경남은행 514-07-0203293(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 9월 13일자 18면 ‘아빠와 둘이 사는 12살 연수’ 후원액 320만원(특별후원 BNK경남은행)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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