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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10) 거창 근대의료박물관(옛 자생의원)

‘50년 만병통치’ 역사 담은 거창의 ‘의료 저장고’

  • 기사입력 : 2017-09-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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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모든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징집은 대학생이든 노동자든 계급이나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거창 출신의 한 젊은 의학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7년 서울대 의학부를 1회로 졸업한 그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육군 9사단에서 치료중대장으로 복무한다. 1년 후 1·4후퇴 때 부상을 당해 명예 제대한 청년은 고향 거창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은 깊었다. 폭격을 맞은 거창지역에는 온전히 남아있는 시설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병원이 절실했다. 아픈 사람은 넘쳐났는데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동네 의원들이 전쟁 통에 모두 없어져 버린 탓이었다. 청년은 고향에 제대로 된 병원을 짓기로 결심했다. 1954년 거창 최초의 근대병원인 ‘자생의원(慈生醫院)’은 그렇게 탄생했다. 병원 설립자는 고(故) 성수현 원장으로 그는 서양 의술을 익힌 거창지역 1호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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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근대의료박물관인 거창군 거창읍 옛 자생의원. 고 성수현 원장이 1954년 건립한 지방의료시설로 경상남도 등록문화재 제5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생의원은 문을 열자마자 매일같이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기록에서 병원 공식 개원은 1958년이지만 사실상 병원이 완공된 1954년부터 본격적인 진료가 이뤄졌다. 심지어 병원을 짓고 있던 중에도 환자들이 찾아와 틈틈이 진료를 했다고 한다. 여전히 유교사상이 남아있던 시기라 째거나 가르는 서양식 의술을 다소 터부시하는 풍토가 있었을 테지만 치료받았던 사람들이 금방 호전되자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서양 의술을 익힌 의사와 병원이 귀했던 시기라 거창뿐만 아니라 합천, 함양, 무주 등 인근 지역에서 수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도 많았다. 병원 진료 차트에 남아있는 ‘함양 안의면 26세 여성’이라는 기록이 원정 진료가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진료에는 낮밤도 따로 없었다. 병원과 성 원장의 집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였던 까닭에 밤중에 갑자기 환자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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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원장의 조근조근한 말투도 병원 인기에 한몫했다고 한다. “원장님이 말투가 나긋나긋하신 타입이었다더군요. 성격이 무뚝뚝하지 않고 친절해서 환자들이 많이 몰려들어도 물어보는 게 있으면 답변을 잘해주셨다고 합니다”. 거창박물관 구본용 학예사가 지역민들로부터 들은 성 원장의 성격에 대해 풀어놓는다.

    거창에서 자생의원은 거의 종합병원이었다. 성 원장은 외과 전공이었지만 거의 모든 과목의 진료를 다 봤다. 아이를 받아주기도 했고 심지어 치과 진료도 했다. 밤중 진료도 가능했으니 사실상 응급실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유명했던 것은 맹장수술이었다. 자생의원 맹장수술의 명성은 지역민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자생의원 바로 맞은편에서 20여 년간 세원인쇄출판사를 운영해온 이창근(67)씨가 매형으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 매형이 자생의원에서 꽤 오랫동안 조수로 근무했어. 얘기를 들으니 많을 때는 맹장수술을 하루에 10건씩도 했다던데. 수술을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잘했다더라고. 하여튼 맹장수술을 엄청 했지. 수술할 때 배를 가르면 김이 확 올라오면서 피비린내가 나는데 아무리 마스크를 써도 이게 아주 견디기 어려웠다고 하데. 매형은 하루 3~4건만 해도 울렁증이 와서 소주를 많이 마시고 했다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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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현 원장의 생전 진료 모습.



    1960년대 초 성 원장은 부산에서 미군이 사용하던 X-ray 장비를 구입해 병원에 들였다. 뼈가 부러졌을 때 그저 손으로 만져보면서 맞춰주던 시절, 뼈의 모양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X-ray 장비는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병원 내부에는 당시 사용됐던 X-ray 기기가 보존돼 있다. 지금에는 거대한 고철처럼 보이는 기계지만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신기한 최첨단 신문물이었을 것이다. 의원을 찾는 사람은 더욱 늘었다. 성 원장은 의원 본관 옆에 입원동 건물을 새로 지었다. 신축 후 자생의원은 기존 대기실, 진료실, 처치실, 약제실, 수술실과 함께 25개 입원실을 갖춘 병원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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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근대의료박물관 마당에 목련 두 그루가 서있다.



    당시 병원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 다만 어려웠던 시절이라 돈을 지불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아 병원에는 외상장부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치료를 받았지만 돈을 못낸 사람들은 의원으로 감자, 쌀, 고구마 등 각종 작물을 들고와 진료비를 대신하기도 했다. “돈 없던 시절이니까 뭐라도 보답은 해야 해서 그런 걸 들고간 모양이야.” 이창근씨의 말에 구 학예사가 성 원장의 사택 입구에 작은 창고가 있었는데 그곳에 사시사철 먹거리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고 덧붙인다.

    자생의원은 속에 담긴 이야기뿐 아니라 건축 구조도 흥미롭다. 자생의원 건물은 동서양의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은 기와를 올린 한옥이지만 사택 내부 방에는 일본식 벽장이 있고 원장실 옆 창문은 옆으로 밀어서 여닫는 형태가 아닌 위아래로 당겨서 여닫는 전형적인 서양식 구조다. 병원 건축사 중 일부가 일본인이었고 당시 일본에 서양식 근대건축물이 한창 유행했던 까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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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근대의료박물관 본관동의 입원실과 1963년 건축된 2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병동.



    자생의원은 지난 2008년 성 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약 5년간 방치돼 있었다. 지역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소를 아깝게 여긴 거창군이 이곳을 근대의료박물관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군이 병원 부지를 매입했고 성 원장의 유족들이 건물을 기부채납했다. 약 3년간 보수기간을 거친 자생의원은 지난해 12월 근대의료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건물 내외부를 비롯해 각종 의료장비는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가지가 뭉텅이로 잘려버린 사택 앞 목련은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자생의원 목련이 진짜 알아줬지. 봄 돼서 여기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면 온 동네가 다 밝아질 정도였거든.” 거창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최형욱(66)씨가 근처에 발걸음했다가 자생의원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병원 건물 높이만큼 키가 크고 가지가 풍성했지만 지금은 여느 나무처럼 세월의 흔적을 별로 찾아 볼 수 없게 된 목련을 최씨가 못내 아쉬운 듯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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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근대의료박물관 X-선실.



    구 학예사는 자생의원이 거창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 거창에 살고 있는 60~70대 중에 자생의원에서 진료를 안 받아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40~50대라면 병원에 부모 문병을 온 경험 정도는 있을 거고요. 당시 기억이 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옛날에 여기서 내가 어디를 쨌다 이런 얘기를 하곤 하시죠.” 예전 자생의원은 지역민들의 온갖 병을 다 치료해주던 만병통치소였고 지금은 그들이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억의 끈인 셈이다. 거창군에서 자생의원을 ‘집단기억의 저장고’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자생의원에는 지금도 지역민들의 기억이 쌓여 간다. 의료박물관으로 바뀐 자생의원에서는 지난 4월부터 매달 거창지역 의사들이 의학도를 꿈꾸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 열리고 있다. 잔디 깔린 입원동이 있는 뒤뜰에서는 거창도서관의 독서모임, 지역민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1954년부터 이어져온 이 기억의 끈이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매년 앞마당에 피어나 동네를 밝히는 목련꽃처럼.

    글=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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