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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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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먹으면서 죽는다- 김한규(시인)

  • 기사입력 : 2017-08-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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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는 우스개 같은 말이 있다. 살면서 먹고 먹으면서 산다. 그러나 나는 감히 오늘, ‘먹으면서 죽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딸은 영화 ‘옥자’를 보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딸에게 “영화 ‘옥자’가 채식주의를 결심할 만큼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냐?”라고 물었다.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딸의 채식주의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존중한다. 딸은 달걀의 경우, 아직 생명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먹고 있다.

    달걀 파동이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달걀을 먹고 있다. 지금까지 먹어 왔는데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물론 그때는 키우는 닭이었지만) 먹어 왔고, 지금도 중요한 먹을거리이기 때문에 먹고 있다. 먹는 것에 들어간 불순물 논란이 어디 달걀뿐인가.

    경제활동도 하지만 집에서 가사노동을 거의 맡고 있다. 그래서 시장을 자주 보러 간다. 식품의 포장지 표시를 항상 확인한다. 이른바 ‘해썹’(HACCP)이나 ‘친환경’ 등이다. 그리고 어떤 식품에 어떤 표시가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 믿는다. 믿지 않으면 사서 먹을 수 없으니까. 먹어야 하니까, 믿는 것이 속 편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본이나 장사는 이 ‘믿는 것’을 이용한다. 공장식으로 산업화된 축산이 과연 친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가둬서 밀집시켜 놓고 키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친환경이 아니다. 물론 가능한 한 제대로 키우려고 하는 축산농가도 있다. 문제는 친환경을 빌미로 속이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무항생제’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속으면서 먹는 것이다. 직접 농사를 짓고(하다못해 텃밭이라도) 가축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지켜준다 하니까 믿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국가라는 것이 있으니까. 군대가 있고 경찰이 있으니까. 공무원이 있으니까. 우리는 아이들을 먹이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키우고, 우리는 애써 일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먹는 것이다. 믿으면서.

    우리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그런데 믿지 않으면 괴로우니까 소통을 원한다. 그러면서 상처받는다. 죽을 때까지 이런 것은 계속된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살기 위해서 먹지만, 먹으면서 죽음의 날을 가는 것이다. 지는 싸움인 것이다. 감히 자본주의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망하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다. 그것과 싸우는 것은 지는 싸움이다. 싸우면서 지는 그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걀파동과는 좀 다른 문제이지만, 나는 딸의 채식을 지지한다. 나도 채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먹는 고기의 양을 좀 줄이는 정도이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 그래서 생산자의 윤리보다 소비자의 윤리를 먼저 생각해본다. 소비하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먹어 왔고, 어떻게 먹을 것인지.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죽을 수 있는지. 가망 없는 듯도 하지만, 애는 써봐야 하지 않을까.

    김한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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