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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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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부적- 양지미(시인)

  • 기사입력 : 2017-08-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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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몇 만원쯤 주고 받아와 문틀 위에 붙여 놓거나 베개 속에 넣어 놓는, 빨간 부적보다 효험 있는 내 부적은 아무 때나 부르면 즉시 나타나 어느 부위든 착 달라붙어 내 손이 약손이다를 주문처럼 외운다. 내 할머니 최점달씨는 살아생전 한글도 다 익히지 못한 반 문맹이었지만 용케도 자손들 아픈 곳을 알아채 적절하게 스스로를 부적처럼 쓰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최점달씨는 아직도 내게 가장 힘 있는 부적이고.

    우리집 강아지 마루는 ‘기다려’와 ‘먹어’란 말에 가장 성실하게 반응한다. 맛있는 간식을 앞에 둔 마루에게 ‘기다려’와 ‘먹어’사이의 간격은 갈등의 시간이다. 가끔 장난으로 ‘먹어’ 대신에 ‘메롱’이라고 해보는데 ‘먹어’의 ‘ㅁ’과 ‘메롱’의 ‘ㅁ’ 사이에서 잠깐 고민하는 그 모습에 웃는다. 삼키지는 못하고 씹다 뱉었다 내 눈치를 살피는 마루에게 어쩔 수 없이 나는 살아 있는 부적이다. 그런 마루를 보며 웃는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수시로 부적이 되라고 떼쓰고는, 매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를 보고도 할머니 웃으실까?

    어릴 때 개에게 한 번 물린 경험이 있는 나는 병적으로 개를 무서워한다. 오죽하면 개 키우는 집에는 가지 않고 산책을 나갈 때도 호신용 등산 스틱을 들고 다닌다. 그런데 일 년 전 딸이 하얗고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친구 집 개가 새끼를 낳고는 돌보지 않아 너무 불쌍해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에 화가 나 당장 다시 데려다 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강아지를 피해 소파에 앉았는데, 나를 졸래졸래 따라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아이, 까만 눈동자를 가진,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되어 엄마와 떨어진 그 아이를 매정하게 내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루와의 인연. 언제나 나에게 최고의 각도와 속도로 꼬리를 흔들며 애정을 표현하는 마루에 비해 나는 아직도 그 아이를 자연스럽게 안아주거나 쓰다듬지 못한다. 살아생전 한 번도 소리 내어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은 할머니지만 내가 할머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우리 집 마루도 내 마음을 아는 걸까? 할머니가 내게 준 무한한 사랑과 내가 강아지 마루와 주고받는 사랑,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를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거나가 무슨 큰 차이가 있나 싶다.

    때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면 주변에 말없이 존재하는 사물, 식물, 동물들이 더 위로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의식하지 못해 잠시 고개를 돌리거나 손을 놓으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릴 힘없는 존재들에 대한 무한 책임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에게 인연이 되어 찾아오는 작고 연약한 그 무엇에 대해 기본적인 배려와 예의를 되새겨 보는 여름 날, 마루는 내 발치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조심스레 만져 보려는데, 어느새 내 손이 나를 쓰다듬던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닮았다. 저 멀리서 붉은 부적 되신 할머니 희미하게 웃으시고 마루의 부적일지도 모르는 나도 웃는다. 어색한 내 손길에 깜짝 놀란 마루, 어리둥절 고개를 갸웃거린다.

    양지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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