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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환상통- 김용권(시인)

  • 기사입력 : 2017-08-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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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알았을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내 모든 문서나 사물함에 비밀열쇠로 꼭꼭 걸어 놓아도 전화로, 문자로, 이메일로, 다양하게 보내온다.

    오래전, 서태지와 아이들이 불러 젖히던 환상 속에 그대가 찾아온 것이다. 환상의 나라는 무한정 진화한다. 보험, 아파트 분양, 신상판매 등 다양한 환상을 소개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단호하게, 때로는 아늑하게 환상을 부추긴다.

    환상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세일하는 날이면 너도나도 환상에 걸린다. 환상의 나라에서는 무수한 경품을 깃발에 걸어 놓는다. 당첨을 노리고 본인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투척하는 순간 환상의 나라로 직행하는 것이다. 환상은 자꾸만 진화한다. 환상의 나라에서는 새로운 환상을 소개하면서 내 귀를 뚫고 들어온 환상 하나에 걸리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TV 속에서는 아내의 환상이 자란다. 채널만 돌리면 없는 게 없다. 환상에 걸려서 주문을 하면 바로 배달된다. 나는 배달된 환상 위에서 나른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의 환상은 금방 깨지면서 또 다른 환상으로 전이된다. 환상은 무한정 키우다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환상의 유통기한은 애초에 짧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나도 한때, 환상에 걸린 적이 있다. 나이가 들고 운동이 부족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건강한 생활을 해보고자 건강식품 소개서를 받아본 것이다. 소개서에는 본인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답변을 받아보기 위해 반드시 연락처를 남겨야 한다. 그러면 곧바로 친절하게 전화가 오는 것이다. 몇 번의 응답으로 상품구매로 이어졌다. 효과는 환상 그 자체였다. 다시는 주문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해보지만 환상의 나라에서는 몇 배의 약효가 가미된 다른 환상을 끈질기게 소개해 왔다. 몸 바꾸며 오는 환상, 스팸으로 돌려버렸다.

    전화위복의 환상도 있다. 타 도시로 이사를 하고부터 밤마다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다. 잠결에 수화기를 들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복집이냐고 물었다. 한밤중에 다짜고짜 복집이냐고 물어오면 난감하지만 난 천천히 수화기를 놓았다. 새로 부여받은 전화번호가 오래전에 누군가 사용한 복국집 전화번호였든가 싶다. 어쨌든 福집이냐고 물어 오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잘못 걸려온 전화가 행복한 상상을 몰고 온 것이다.

    나도 이제 환상 하나를 만들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게 될 사람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야겠다. 특별해진 영혼에게 부풀고 부푸는 상상을 불어 넣어야겠다. 내 일상이 무료하지 않게 그녀의 귀를 파고드는 세레나데처럼, 소통의 날개를 달고 날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현란한 기교를 버리고 왜곡된 허상이 아닌 실상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다.

    불멸의 이 시대에는 감성적인 인식과 주체의 객관화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굴절되지 않는 이성적 상상이 필요한 것이다. 너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상이 만들어질 때, 우리 모두가 전유하는 특별한 마음의 상표를 단 환상이 유통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김용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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