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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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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효도 라디오- 김한규(시인)

  • 기사입력 : 2017-06-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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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글스가 1979년에 데뷔하면서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인다’고 노래했다. 카세트를 이용해 동영상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표준규격인 ‘VHS’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VHS는 1976년에 태어났었다. 동네의 골목마다 있던 ‘비디오대여점’은 영화광을 탄생시키는 산실이기도 했다. 비디오대여점의 우수회원이었던 내게 그곳은 ‘누벨바그’나 ‘필름누아르’를 공부하는 도서관이었다.

    물론 버글스가 비디오 때문에 라디오스타가 다 없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겠지만 라디오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도 스타들은 라디오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너나없이 드나든다. 내게 라디오는 비디오 이전에 ‘팝’을 공부하는 학교였다. 심야의 전파를 독점했던 한 프로그램에 엽서로 신청곡을 청하기도 했고, 명멸했던 수많은 팝스타를 거기서 알았다. 물론 VHS는 생명을 다했지만 거기에 기록되던 영상은 확대재생산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렇게 영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는다. 여전히 신청곡 주문은 이어지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연들이 방송국으로 날아든다.

    2006년에 이준익 감독이 안성기와 박중훈을 내세워 만든 영화 ‘라디오스타’를 기억한다. 당시에 ‘타짜’나 ‘괴물’ 같은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는 사이에 ‘라디오스타’는 조용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 박중훈은 지금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문학작품에서도 라디오는 꾸준히 등장한다.

    라디오의 생명이 왜 이처럼 끈질길 뿐 아니라 번식하고 있을까. 문화적인 분석을 할 형편은 안 되지만, 아마도 우리 삶에 애환이 많은 것 때문이 아닐까. 사연을 들어보면 기쁜 내용도 많지만, 힘들거나 슬픈 이야기도 많다. 사람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너나없이 사연을 보내는 것이 한편 신기하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막혀 있기에 그럴까 싶다.

    비록 마주 앉은 이가 아니라 방송진행자이지만 하소연하고 때로는 상담도 한다. 익명을 보장해주는 도시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기보다는 외롭다. 타인은 점점 벽이 되고 나 또한 그 벽을 허물지 못한다. 그 벽 사이에 작은 틈을 내며 라디오전파가 흘러든다. 그 틈에다가 혼잣말을 하고 귀를 갖다 댄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정현종 시인이 썼다. 짧은 시의 제목이기도 한 ‘섬’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의 섬이 된다. 라디오를 그 섬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당신에게 가기 전에 라디오에 내 말을 전한다. 아니면 당신에게 갈 수가 없어서 라디오를 통해 당신을 듣는다.

    지난 주말에 마을 근처 산길을 초로의 남자가 ‘효도 라디오’를 들으며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스치며 들으니 음악 재생이 아니라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남자는 마치 자기 이야기인 듯 유심히 들으며 산길을 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날마다 전해지는 사연에 공감하는 것 같다. ‘내 얘기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위안을 얻는다. 음악과 함께 라디오에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작은 라디오를 많이 갖고 다니며 듣는다. 그것을 ‘효도 라디오’라고도 한다. 선물을 한다면 효도가 된다는 뜻이겠다. 이처럼 효도의 가치도 충분한 라디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뚜렷한 모습으로 떠다니고 있다.

    김한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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