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툭툭 불거진 손마디를 보여주는 동안, 재훈(가명·14)이는 긴장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빠가 가정 형편을 설명할 때는 무릎의 딱지를 만지작거렸다. 며칠 전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생긴 상처였다. 사실 재훈이도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형 재성이(가명·19)를 바라봤다. 형도 할 말이 많을 테지만 역시나 말이 없었다.
아빠 진형(가명)씨는 부산에서 11년 동안 플라스틱 사출일을 했다. 다소 어린 나이에 아이들 엄마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행복은 가까이 있는 것 같았는데, 쉽게 잡혀주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날 때쯤이었다.

진형(가명)씨와 두 아들이 의령군 통합사례관리사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8년 전쯤일 겁니다. 몸이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갔어요.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다가 통풍 진단을 받았어요” 대사질환의 하나인 통풍은 끔찍한 통증과 함께 요산이 연골, 힘줄 등에 침착되는 증상을 보인다. 한때 올곧게 뻗어 있던 진형씨의 두 복사뼈와 손가락 마디마디는 나뭇가지처럼 어긋나게 툭툭 불거져 나와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진형씨의 통풍은 그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데 있었다. “통증이 찾아오면 6알씩 약을 삼킵니다. 그런데 이것도 내성이 생기나 봐요. 점점 약을 많이 먹어야 통증이 멈추거든요.” 통증이 참을 수 없이 심할 땐 병원에 입원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린 재훈이를 혼자 둘 수 없고, 병원비도 만만찮아 진통제를 맞고 나와 버티는 생활을 반복 중이다.
이런 생활은 가장의 지위를 흔들리게 했다. 경제력의 상실은 불화를 불러왔다. 아이들 엄마와는 7년 전 결혼관계를 정리했다. 진형씨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가 계시던 의령으로 거처를 옮겨 나이든 조모와 힘을 보태어 아이들을 길렀다. “그나마 할머니가 계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는데, 작년에 돌아가시고 셋 남았습니다.”
재훈이네 집은 어린 재훈이의 고사리손으로 꾸려진다. 학교를 다녀오면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아버지도 돌본다. 지내고 있는 집도 진형씨의 형이 소유한 허름한 주택. 얼마 전엔 지붕이 새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수리를 했다. 생활비는 전적으로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하고 있다.
형 재성이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공부한다. ‘뭐라도 제대로 배워 자리를 잡고 가정에 보탬이 되겠다’. 1970년대 산업 역군의 입에서나 들을 법한 다짐이 재성이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마침내 재훈이도 어렵게 입을 뗐다. “저… 태권도장에 가보고 싶어요…” 언젠가 친구 따라 가보았던 태권도장은 별천지로 보였다. 멋있고 강인해 보였다. 재훈이는 종종 아빠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한다. 그건 14살 아이가 홀로 견디기엔 너무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아빠 진형씨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택시를 몰아보려고 회사를 몇 군데 찾아가 봤지만 통풍이라는 말에 선뜻 일자리를 내주는 곳이 없었다. “오래 서 있는 일이 아니면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회사가 받아주질 않으니 지입택시를 하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되네요. 그렇게 조금씩 일해서 재훈이 태권도장도 보내고 싶고….”
김성엽 의령군 복지담당 통합사례관리사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고 가족 모두가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충분히 적절한 사회활동이 가능한 가족이다”며 “이들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도움 주실 분 계좌= 경남은행 514-07-0203293(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5월 11일자 6면 가정폭력에 시달린 한부모가정 현수 후원액 315만원(특별후원 BNK경남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