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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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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오월- 한상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05-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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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처럼 아름다운 계절이 있을까, 너무나 아름다워 오월아-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제 이름을 빚어 담장 너머에 붉은 장미꽃을 한 아름 피워낼 것 같다. 푸른 보리밭도 바람 따라 넘실거리며 누렇게 익어간다. 눈부신 햇살 속의 산과 들도 나날이 푸르러 가고 그 푸름은 저마다의 숨결과 빛깔로 자신들을 가꾸기에 바쁘다. 텃밭과 곱게 써레질한 논에도 봄 소풍 나온 어린 모종과 모가 오월을 닮아가고 있다.

    작년 오월이었다. 길을 헤매다가 노부부가 써레질한 논에서 손으로 모를 심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에 한동안 노부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저절로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기계로 모내기를 했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손으로 수를 놓듯 모를 심었다. 모내기를 하는 날에는 잔칫날 같았다. 많은 사람이 필요했기에 음식도 푸짐하게 장만했다. 큰 가마솥에 한 고슬고슬한 밥은 정말 맛이 있었고, 솥에 눌어 붙어 있는 고소한 누룽지 또한 일품이었다. 큰 쇠주걱으로 누룽지를 긁는 척척 소리만 들어도 누룽지가 입안에서 과자처럼 바싹거리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은 멍텅구리(뚝지)라고 부르는 말린 바닷물고기를 고추장 양념을 발라 놓은 것이었는데, 어찌나 맛있든지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소하기도 하고 쫄깃하기도 한, 오묘한 맛의 멍텅구리란 녀석은 지금의 밥도둑이라는 간장게장보다 열 배는 더 맛있었다. 아니, 간장게장과는 비교도 안 된다.

    흙 묻은 손을 맑은 개울에 대충 씻고 햇볕에 그을린 햇감자 같은 얼굴로 논둑에 앉아 고수레하고 허겁지겁 밥을 먹던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였고, 결국 모두 자연 속으로 돌아갔다. 막걸리를 마신 뒤 두툼한 입을 거친 손으로 스윽, 훔치며 캬~ 하고 기쁜 추임새를 넣던 그들은 땅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신이 일구는 흙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작은 욕심을 부릴 뿐이었다. 이제 그들이 일구던 논과 밭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바뀌었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더 윤택한 삶을 안겨 주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자연을 훼손하고 얻은 물질적 부는 일부 자본가들에게 집중돼 버렸고, 훼손된 자연이 주는 나쁜 환경은 고스란히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있다. 뺏듯이 땅을 산 사람들은 더 높은 가격에 땅을 팔고 사면서 이익을 남긴 뒤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 전원주택이 들어섰지만 서로 아는체 하지 않는다. 아파트의 삭막함이 작은 시골 마을로 옮겨온 듯하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비싼 대문을 하고 인공적으로 정원을 꾸민 전원주택은 자연의 일부로 살려고 이사 온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가 되기에는 너무나 화려하다. 하지만 오월은 이 모든 잡음을 가만히 부둥켜안고 자신의 모든 것들을 우리들에게 준다.

    거리는 벌써 녹음이 한창이다. 새로 돋은 연초록 나뭇잎은 잔 바람에 흔들릴 때나 햇살에 반짝일 때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도 아름다운 오월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오월은 누구의 것이 아니다. 느끼는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도 가짐과 덜 가짐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의 것이다.

    한상식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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