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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날의 추억- 한상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04-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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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긋한 쑥내음 짙은 쑥국을 먹으며 새삼 봄을 느낀다. 자연과 멀어진 도시의 삶은 마치 섬 같아서 자연스레 계절의 변화에 무뎌진다. 어릴 적 봄은 소 워낭소리로 청아하게 왔다.

    이른 봄부터 들에는 소를 앞세워 논과 밭을 가는 농부들로 부산했고 그 속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목에 멍에를 쓰고 쟁기를 한 소가 마침표 찍듯 우직하게 큰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울리던 댕강댕강 소리를 들으며 난 누나와 함께 달래와 냉이, 쑥을 캐기도 했다. 고운 흙의 숨결을 곱게 받은 그들은 봄이 주는 순결한 선물이었다. 파아란 보리밭을 건너오던 바람 그리고 그 너머에 아물아물 피던 아지랑이와 푸릇하게 물오른 여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애달피 울던 산새는 오는 봄을 더 짙고 또렷하게 만들었다.

    봄은 냇가에도 왔다. 냇가의 봄은 소리와 물빛으로 오는데, 겨울 내내 하얗게 얼어 있던 물이 조금씩 녹아서 흐르는 냇물은 생명을 일깨우는 졸졸졸 소리로 발길을 멈추게 했고, 겨울의 흐린 물빛을 벗은 맑은 물빛은 눈길을 멈추게 했다. 손을 씻으면 아직 살짝 차가운 듯해도 겨울의 물과는 다른 개운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냇물에 들에서 캔 달래나 냉이를 씻는 누나의 손길도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

    봄날의 하루는 그리 길지 않아서, 해가 앞산에 걸리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온종일 들에서 일을 하던 농부도 징검돌을 건너다 냇물에 손을 씻고 흙 묻은 옷을 털었다. 오랜만에 고된 노동을 한 소도 물 한 모금으로 노동의 갈증을 달랬다. 아버지는 자신의 허기를 애써 외면한 채 늘 소를 먼저 챙겼다. 서둘러 여물을 끓이고 끓인 여물을 알맞게 식혀 소에게 주었다. 아버지가 소여물을 끓이는 사이 누나는 서둘러 저녁을 준비했다. 달래와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쑥으론 쑥국을 끓였다. 이윽고 방에 밥상이 들어오면 향긋한 내음이 먼저 코끝을 자극했다. 술적심한 숟가락을 입속에 넣으면 봄은 입속에도 왔다.

    향긋하고 정결한 맛의 된장찌개와 쑥국은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우기에 충분했고, 봄을 느끼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쑥국과 된장찌개를 먹고 나면 봄은 어느새 성큼 와 있었다. 날마다 앞산은 조금씩 푸릇푸릇해졌고, 돌담에 기대어 선 배나무도 하얀 배꽃을 피웠다. 배꽃이 피면, 배꽃 잎의 그 하얀 물결로 인해 밤에도 방안이 환해서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난분분히 꽃이 질 때면 눈이 오는 듯했고, 꽃잎이 가만가만 내려앉은 하얀 마당은 밟기가 미안했다. 공중에서 바람에 이끌리다 떨어지는 꽃잎을 쫓아다니던 강아지는 어느새 지쳐 따뜻한 봄볕 아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젖을 빠는 꿈을 꾸는지 입을 씰룩거리며 자는 강아지는 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보드라운 강아지의 털을 만지고 있으면 나도 눈이 저절로 감겼다. 강아지의 잠이 나에게로 번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베란다에 봄볕이 가득하다. 집이 남향이라 겨울에는 볕이 방안까지 들어오지만 계절이 바뀐 지금은 베란다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봄볕이라 그런지 겨울의 찬 볕과는 사뭇 다르다. 봄이 깊어갈수록 볕은 베란다에서 사라지겠지만 그 사라짐만큼 봄도 빨리 오는 것이어서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멀리 강둑에서 쑥을 캐는 사람들이 보인다. 적당히 떨어져 앉은 거리가 아름답다. 그 사이사이에도 봄이 오고 있다. 기쁜 노래로 오고 있다.

    한상식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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