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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서연우(시인)

  • 기사입력 : 2017-03-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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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사는 일이 바빠 한 달, 아니 일 년에 한두 권의 책 읽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틈을 내 서점에 들르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어렵게 책을 골랐는데 막상 읽으려면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이는 겨우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나 노안으로 돋보기 신세를 져야 해 마음만 종종거린다고 한탄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들도 독서 생활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1998년 미국에서는 시애틀 공공도서관 사서인 낸시 펄(Nancy Pearl)의 ‘만약에 온 시애틀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이라는 제안으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전개됐다. 이웃과 단절된 삶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고 모여 앉아 토론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그 취지이다. 시애틀 시민들의 호응에 고무돼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요인은 시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세심하게 조정하고 배려한 책 선정 절차 덕분이다.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2001년 유재석-김용만의 진행으로 방송됐던 ‘느낌표-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소개된 책들은 1년 이상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 프로그램은 일이십 대 젊은 층을 독서인구로 이끌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방송 초기에는 ‘책을 선정해서 읽게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책을 권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양서를 소개하고 독서 생활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 방송사의 제작 의도가 참 좋았다.

    나는 독서 하면 안중근 의사를 떠올린다. 마지막 소원을 묻는 사형집행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5분 뒤 사형이 집행됐다. 안 의사에게 독서는 옥중 저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책 읽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책 읽기를 통해 얻은 지혜는 우리 삶의 세계관을 구성해 줄 뿐 아니라 삶의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일은 책 읽기 문화부흥운동이다.

    창원시는 지난해 문화예술도시를 선포했다. 그러나 서산이나 원주, 대구, 광주, 영주시 등 타 지자체에서 진작에 시작한 책 읽기 운동 같은 것이 아직 없다. ‘사림동의 기적’이라 일컫는 작은 도서관의 책 읽기는 있지만, 범시민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벽화사업, 명예문화대사, 미술관, 예술학교, K-POP축제 등도 좋지만, 책 읽는 시민이 많은 도시야말로 정신문화 창달을 위하는 문화예술도시가 아닐까. 책 읽는 시민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는 흥미와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건강한 문화시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안중근 의사처럼 책을 읽을 5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책은 곧 삶이다.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팍팍하고 어렵고 어수선한 이 시대, 우리 삶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서연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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