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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이경순(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01-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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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월 중반이다.

    해마다 우리는 반짝이는 포부를 안고 새해를 맞이하지만, 그 반짝임은 어느새 일상 속에서 닳아 생기를 잃어간다.

    며칠 전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다가 두 새댁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한 여자가 올해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여자가 자격증은 따서 뭐하냐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써먹게! 먼젓번 여자가 대답했다. “써먹게”라는 말이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

    스치듯 두 여자 얘기를 듣자니 몇 년 전 아이들과 했던 강강술래가 생각났다. 연습할 때 한 아이가 하는 둥 마는 둥, 짬만 나면 친구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찝쩍댔다. 아이는 도무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어르고 달래고 때론 야단을 쳐도 별 소용없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겪어 알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친구들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하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유달리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류는 뭘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못하는 아이도 아니다. 도무지 안 하려는, 즉 아무런 의욕이 없는 아이다. 알고 보면 이런 아이 뒤에는 대체로 부모의 빗나간 양육 태도가 숨어 있다.

    아이가 아쉬움을 느끼기도 전에 부모가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준다. 사주고, 해주고, 먹여주고 치워준다. 아이는 아쉬움이나 호기심을 느낄 겨를이 없고 의욕조차 없다. 그러니 성취감을 느낄 새가 없다.

    반대로 자녀가 뭘 하든지 말든지 방임해 버리는 부모가 있다. 관심이 없으니 아이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대충 흐지부지하게 끝내고 만다. 그런데도 부모는 정작 그 이유를 모른다.

    어쨌든 연습하기 싫다던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자 슬슬 관심을 보였다. 건들거리며 나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같이 흐늘거렸다. 물론 박자나 동작은 제 마음대로였다. 그러다 노래와 동작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점점 더 흥겨워했다.

    공연 날이었다.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에 이어 마지막 순서인 대문 놀이까지 즐겁게 마쳤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 입에서 며칠 동안 노래가 절로 나왔다.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동대문에 들어가>

    비록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아이가 성취감을 느낀 것이 확실했다. 이 일이 앞으로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으리라 짐작했다.

    나는 앞에서 말한 여자가 결심을 실천하기로 했는지 아니면 포기하고 말았는지 모른다. 공자는 산을 움직이려는 자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왕이면 그녀가 도전해 보기를 원한다.

    문을 열 열쇠는 오로지 자신이 쥐고 있다. 그러니 어떤 대문에 들어갈지도 자기에게 달려 있다. 누군가 열어주는 문은 의미가 없다. 지적인 호기심, 도전 의식, 자발적인 마음, 긍정적인 태도,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람들의 가슴에 이런 작은 불씨가 하나 있다면 언제든 활활 타오르지 않을까?

    문이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문을 만드는 열정으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각자 지녔던 포부로 올 한 해는 자신만의 반짝이는 열쇠 하나씩 간직하고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자신의 열쇠를 찾으려고 지금 애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경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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