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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대통령 명령- 강천(수필가)

  • 기사입력 : 2017-0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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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사무실 앞 사철나무에는 참새 떼가 자주 찾아온다. 먹을거리를 구하기 힘든 계절이니, 아직 남아 있는 열매가 그들에게는 좋은 양식이 되는 모양이다. 거기에다 인적이 드물고 이파리마저 시들지 않아 무성하니 이만한 놀이터도 없지 싶다.

    어릴 때 살았던 집은 사철나무가 담장을 대신했다. 그뿐만 아니라 넓은 돌을 깔아 만든 장독대의 울타리도 사철나무로 빙 둘렀었다. 나지막하고 초라한 초가였지만, 멀리서 보면 나무에 둘러싸인 숲속의 집처럼 보였다. 이맘때쯤이면 탁탁 벌어진 열매의 붉은 속살이 드러나 마치 꽃봉오리처럼 피어나고는 했다. 나무 윗부분은 잎이 무성해서 울담으로서의 역할도 했지만, 줄기가 굵어진 아랫부분은 구멍이 숭숭해 닭이며 고양이 같은 짐승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새벽잠을 깨우는 새마을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집집이 한 사람씩 동원돼 사방사업을 하고, 초가지붕도 슬레이트로 바뀌어 갔다. 아침이슬이 바짓가랑이를 흠씬 적시던 집 앞의 오솔길도 널따란 농로로 넓혀지게 됐다. 저만치서 길을 닦아 오던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속속 모여들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울타리를 헐어야 하는데 머뭇거리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무가 제법 오래됐고 담장 역할도 하고 있었으니, 혹시나 있을지 모를 우환이 두려웠던 탓이리라.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처럼 금줄을 두르고 치성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큰 나무에 대한 경외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의 진척이 늦어지자 보다 못한 이장이 나서서 나에게 지필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지를 두어 번 접더니 ‘大統領 命令’이라고 개발새발 써 내리고는 가장 큰 나무 둥치에다 붙였다. 막걸리 한 사발을 따라서는 사방으로 흩뿌리더니 큰소리로 “대통령 명령이요”라고 외치고는 대뜸 잘라버렸다. 나는 마루에 앉아서 내 마음의 담장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무가 다 베어지고 새참을 기다리던 어른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대통령이 무섭긴 무섭네, 귀신도 꼼짝을 못하는구먼.” 마을 앞을 가로지르던 성 담벼락을 헐어낼 때도, 개울 옆 아름드리 탱자나무를 베어낼 때도 ‘대통령 명령’은 언제나 무상한 권력으로 귀신까지 쫓아 주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무소불위한 명령의 주인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강산도 변했다. 그런데도 권력의 힘은 아직도 그대로인가 보다. 단지 명령의 방법이 일방적인 강압에서 ‘국민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바뀐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이다. 요즘 위정자들은 무엇을 하든 국민을 내세운다. 무엇을 주장하는 사람도 국민, 막아서는 사람도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희생을 강요할 때에도 국민을 위해서이고, 사욕을 채울 때도 국민의 뜻이 앞선다. 권력자는 누구나 자기에게 편리한 자기만의 국민을 가지고 있다. 실체도 없는 대통령 명령으로 귀신을 붙잡아두듯이, 얼토당토않은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자기를 합리화한다.

    썩은 둥치를 송두리째 들어내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소망하는 촛불을 밝힌 채 새해가 밝았다. 엄동에도 아랑곳없이 오들거리며 희망의 촛불을 든 성숙한 국민의 뜻, 그 반의 반만이라도 위정자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모이고 모인 그 빛이 정치를 넘어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받는 우리 서민들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강 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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