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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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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31) 김상문 한국화가의 창원 주남저수지

걸음걸음 따스하고 넉넉한 고향 주남의 품
논에 물대고 아이들 멱감던 고향 주남저수지

  • 기사입력 : 2016-09-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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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가 필요할 때 습관처럼 찾게 되는 곳. 창원 시내에서 차로 2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 풍경을 감상하기도, 산책하기도, 커피를 한잔 마시기도 더없이 좋은 익숙하고 편한 장소. 창원 주남저수지다.

    주남저수지를 화폭에 담는 김상문 작가는 이곳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처럼 저수지를 따라 데크가 깔리고 생태문화관이 세워지고 길목 곳곳에 카페가 들어서기 전 주남저수지의 원형이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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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문 경남미술협회장이 창원시 의창구 동판저수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상문 작가는 주남저수지 바로 옆 산남저수지 인근 ‘산남마을’ 출신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남저수지는 동판저수지, 주남저수지, 산남저수지로 이뤄져 있다. 지금은 세 개 중 가장 큰 주남저수지가 일대를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쓰이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떠나 마을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지만 예전의 산남마을은 100~120호가 살던 큰 동네였다.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거나 어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저수지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주남저수지가 농업용수를 대는 곳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저수지에서 물을 대 농사를 지었어요. 저수지 바닥에는 민물고기나 조개가 아주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물이 빠지고 나면 조개를 잡아오곤 했는데. 또 수십명의 사람들이 가래 같은 도구로 바닥에 있는 고기를 한소쿠리씩 잡아가기도 했었고요. 아, 멱을 감고 목욕을 하기도 했었어요. 소를 끌고 가서 풀을 먹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현재와는 사뭇 다른 고향의 풍경을 풀어 놓는 김 작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마산합포구 중성동에는 그의 화실이 있다. 입구에는 ‘산남화실’이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걸려 있다. 그는 호(號)도 ‘산남’을 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을 떠난 이후로도 자주 고향을 찾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마을을 지켰던 까닭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고향집은 그 자리에 남겨뒀다.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 때 방문하는 등 별장처럼 쓴다고 했다.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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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문 화가가 그린 동판저수지 펜화.


    경남대학교 미술교육과에서 한국화에 입문한 그는 초반에 주로 인물, 정물 위주의 채색화를 그렸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는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먹을 주로 사용하고 옅게 채색을 한 담백한 그림이다. 그의 풍경화에는 주로 시골풍경이 담겨 있다. 한국화라고 하면 보통 폭포, 바다, 산이나 운무 같은 웅장한 자연이 떠오르지만 그의 그림에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나 기와, 나무와 풀이 등장한다. 어딘지 모르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풍경이다. 김 작가는 그런 풍경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광활한 대자연보다는 시골의 소소한 모습이 좋아요. 아마도 고향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늘 고향을 마음 한편에 두고 있는 그는 틈틈이 주남 일대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 왔다. 지금까지 그린 그림만 20여 점이다. 주남의 이곳저곳을 그리지만 특히 좋아하는 풍경은 동판저수지다. 인터뷰한 날 최근에 그렸다는 동판저수지 펜화를 내보였다.

    “동판저수지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거든요. 그림으로 담기에 정말 좋아요. 저는 청송의 주산지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동판저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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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문 作 ‘주남저수지의 겨울’


    그의 말을 따라 그간 가보지 않았던 동판저수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 주남저수지보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적어 조용하다. 우거진 나무와 풀숲 속에 들어앉은 저수지 풍경이 그의 말처럼 주산지 못지않다. 연둣빛, 초록빛 풀과 연잎이 덮여 초록빛과 푸른빛이 섞인 호수가 말간 하늘색과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그는 여름, 가을이 가고난 후 겨울의 풍경도 훌륭하다고 했다. 그의 한국화 속에 담긴 동판저수지의 겨울은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이다. 나무가 잎을 모두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은 사색에 적합한 풍경이다.

    주남저수지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그 가치를 조명받기 시작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때는 주남저수지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장소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논에 물을 대는 곳으로만 생각했었죠. 지금도 철새도래지로 유명합니다만 예전 저수지에는 ‘물 반 새 반’일 정도로 정말 철새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도 그때는 그냥 당연한 풍경인 줄로만 알았어요.” 동판저수지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생각하면 그 일대 여러 마을 사람들을 다 먹여살린 곳이었습니다. 고기를 잡든 농사를 짓든 항상 저수지를 바탕으로 살아왔으니까요. 이곳이 저의 고향인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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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다’는 그의 말이 문득 마음에 와닿았다. 이따금씩 늘 곁에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산다. 없으면 허전하고 아쉽고 속상할 텐데 평소에는 도무지 그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다. 주남저수지는 그런 곳이다. 당연하고 익숙하게 생각하지만 그 존재가 고맙다. 과거에는 생계를 잇는 터전이자 아이들의 수영장과 놀이터였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휴식공간이자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존재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주남저수지에 기대고 있다.

    그는 여전히 주남저수지를 자주 찾을 것이고 또 그릴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화가보다 경남미술협회 회장으로 활동이 더 많아 매일매일이 바쁘지만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주남저수지의 풍경만 시리즈로 그리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주남의 풍경만으로 전시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사실 이곳이 언젠가는 변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지금 주남저수지는 더 이상 물이 빠지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는다. 조개를 잡는 사람도, 수영을 하는 사람도 없고 주변 마을은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그래도 저수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세월이 지나 주남저수지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도 존재는 변함이 없기를 바란다. 그의 그림 속에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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