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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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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들만의 엘리트-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16-09-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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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손창섭이 1958년 발표한 ‘잉여인간’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잉여인간, 참으로 끔찍한 말이다. 인간을 하나의 잉여물로 취급한다는 것은 인간의 가치가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의 표현이다. 경제적 의미에서 잉여라는 말은 긍정적이다. 무언가 남아돈다면 그것을 비축해 두었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아도는 인간이라니….

    작품 속에서 대표적 잉여인간은 익준과 봉우이다. 그들은 친구이자 치과의사인 만기의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익준은 비분강개형의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경제적 빈곤 때문에 무능력한 인물이고, 봉우는 경제력 있는 아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실의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무능력은 그들의 탓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관계 있다. 작가는 천성이 곧은 익준과 선하고 순수한 심성의 봉우가 처한 현실을 빌려, 전쟁 이후 우리 민족 개개인이 겪고 있는 아픔을 드러내고자 했다. 결국 ‘잉여인간’이라는 말은 사회구조적 희생자들 혹은 주변인들을 대변하는 반어적 표현이었다.

    만약 사회가 투명했다면 이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을 속이거나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심성 반듯한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겨우 지켜가고 있는 인물이 치과의사 만기이다. 그는 외모, 교양, 능력을 두루 갖춘 엘리트다. 비록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무력한 두 친구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작가는 만기라는 인물을 통해 암울한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만기는 잉여인간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려 애쓰는, 리더의 성향을 보인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 쉬운 환경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작중 인물 만기처럼 힘없는 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리더의 성향을 가진 엘리트들이 많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심리가 팽배해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자신도 반성할 점이 많겠지만, 약한 자의 것을 차지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합법적 절차라는 포장으로 당당하게 빼앗는 경우도 목격된다. 이럴 때 암묵적 동조나 무심을 처세로 삼아 나도 모르게 피해자에게 집단적 갑질을 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보는 요즘이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 좇는 정치인, 힘 있는 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무 관련자, 이기적인 행정·교육계 관료와 경찰공무원 등 정치인과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역할을 거꾸로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허탈해진다.

    점점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얻지 못하는 청년들, 조기 퇴직자, 노년층 등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타적 엘리트, 진정한 리더의 성향을 가진 자들이다.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런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 주변만을 위하는 능력 발휘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 자리는 이타적 리더의 품성을 가진 엘리트들이 앉아서 대중다수를 위해 일을 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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