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좋은 길동무를 만들자- 강현순(수필가)

  • 기사입력 : 2016-08-05 07:00:00
  •   
  • 메인이미지

    우리네 인생살이가 등산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고지에 닿겠다는 일념 하나로 앞만 보고 내달린다는 점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뒤 정상에서 하산할 때면 기쁨은 잠시,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도 닮았다.

    산정을 향해 오르면서 만나는 산 식구들은 모두 친구나 진배없다. 오로지 상승일로로 달리기보다는 가끔 주변에 있는 좋은 벗님들과 함께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산행길이 숨차고 힘들 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쉼터를 자청하고 있는 바위를 찾을 일이다. 잠깐 기대기만 해도 대자연의 웅장한 자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청·녹·홍·황 등의 눈부신 산빛에 감탄할 것이다.

    곳곳에서 이파리의 잎몸이 널따란 나무가 길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면 뭇 산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고 심심찮게 날다람쥐가 와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평소, 자신은 항상 남에게 피해만 입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마음을 부끄럽게 해주는 순간이다. 그 나무처럼 곧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는 걸,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야 행복지수가 높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길섶에서 맑은 이슬 머금고 있는 키 작은 풀꽃들도 바위와 나무 못지않은 좋은 길동무이다. 오종종 모여 앉아서 건듯 부는 바람에도 깔깔대는 천진한 모습을 보노라면 일순 동심에 젖으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렇다고 좋은 친구를 필요로만 하거나 이용만 해서도 안 될 터이다. 힘들 때 편안한 쉼터가 돼준 바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준 나무, 그리고 귀엽고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풀꽃들의 고마움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도 그들에게 똑같이 좋은 친구가 돼줘야 한다. 그 친구들 주변에 위험사항은 없는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등산을 끝내고 산을 내려올 때 그 친구들이 변함없이 대해줄 것이어서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편안하고 든든한 모습으로….

    산에 사는 모든 식구가 다 좋은 친구는 아니다. 아름다운 자태로 길손을 유혹하는 독버섯은 마치 이중성격을 지닌 친구를 보는 듯 뜨악하다. 비탈진 곳 근처에 있는 돌멩이도 언제 어디로 굴러갈지 알 수 없는 변덕쟁이 친구다.

    천성이 나쁜, 충고도 훈계도 안 통하는 독버섯과 독사 등은 아예 멀리하면 그만이다. 쓰레기 더미 옆에서 예쁘게 피어 있는 꽃을 친구로 삼고 싶을 땐 쓰레기를 치워주면 오래오래 꽃향기를 맡게 해줄 것이다.

    친구는 몸집과 나이가 똑같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몇 아름이나 되는 바위도, 손톱만한 작은 풀꽃도 살아가는 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제아무리 하늘을 찌르듯 키 큰 나무도, 꽃 중의 꽃이라도 진정한 친구가 없다면 외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외로움에 빠지면 뇌기능이 저하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듯 좋은 길동무와 정을 주고받으며 알맞은 보속으로 산을 오르내린다면 정녕 행복한 산행이 될 것이다.

    무릇, 친구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도와주기는 어렵지 않으나, 시기·질투심이 발동해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건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럴 때 잠시라도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려봐야 할 것이다.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라는 본받아야 할 참으로 귀한 말씀을.

    강현순 (수필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