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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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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별안간 찾아오는 행운처럼- 임성구(시인)

  • 기사입력 : 2016-07-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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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을 쓰려고 마음 다잡고 컴퓨터 앞에 앉는데 별안간 시가 나타나 따라붙는다. 참 이상도 한 일이지? 평소 주요 문예지에 원고청탁을 받고 정말 좋은 시를 쓰려고 애쓸 땐 쓰이지 않던 시가 글쎄, 거미줄처럼 줄줄 뽑혀 나온다. 아- 그럼 칼럼은 언제 쓰란 말인가? 쓰는 족족 좋은 시는 아니지만, 마음 가다듬고 쓸 때보다 독자들에게 시의 소화력이 뛰어나다는 평판을 듣는다. 이것은 아마도 시인으로서 찾아온 별안간의 큰 행운이 아닐까? 왠지 행간들이 수월하게 주제에 맞게 형상화되는 좋은 느낌이 든다. 꾸밈없이 유연하게 다가가는 맑은 첫 느낌, 첫 마음을 그대로 펼쳐서 은하를 건너가는 순수시라 그런가 보다.

    별안간 찾아온 행운으로 네 편의 시가 완성되었고, 긁적여 놓은 시 또한 여러 편이다. 하여 칼럼의 원고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번에 쓰는 칼럼은 그냥 평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평이한 것이 일반 독자들에게 소화도 잘 되고 이해도가 높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인생이란 것도 우리가 바라고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바라는 대로 다 되는 일은 더 이상의 행운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염원이자 이상에 가까운 일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별안간 툭 떨어지는 행운이 생긴다. 예기치 않던 이런 행운은 기쁨의 배가 된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 행운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일도 흔히 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추억하는 자리에서 그것이 큰 행운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큰 행운일 수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엮어가는 수많은 인연들 모두가 별안간의 행운이다. 어쩜 내가 태어난 것도 별안간이 아닐까? 부모님이 좋은 인연으로 만나 날 창조해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그의 고귀한 자식이 된 것은 별안간의 일이고 행운이다. 비록 말 안 듣는 철천지원수 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나의 업이자 별안간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매우 달갑지 않지만, 그렇게 믿고 바른 길로 인도하고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때론 부모로서는 매우 유익하지 않지만 “그래, 이런 자식도 내가 사랑으로 낳았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비우는 일도 행운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런 자식이 더 큰 행운을 안겨 줄 수 있으니까.

    내가 시인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별안간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별안간 얻어지는 행복. 이것은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감히 느낄 수 없는 아주 고귀한 행복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시가 유성처럼 툭 떨어지는 것이 좋은 예감으로 다가온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과 인연들이 별안간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사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꽃(좋은 가정)을 가꾸고 아름드리나무(좋은 세상)를 키우는 것도 다른 사람에겐 별안간 찾아가는 큰 행운이리라. 세상이 제아무리 각박하고 거칠어도 행운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자.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꾸준히 마음을 가꾸다 보면 꽃의 향기와 나뭇가지들은 더 높은 곳에 가닿을 것이며, 언젠가 우리 주위에는 그 어떤 시련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빛날 무성한 잎들로 가득찰 것이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지친 일상들이여, 파이팅!

    임성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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