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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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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직 문 앞에 서 있다- 박기원(시인)

  • 기사입력 : 2016-07-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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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문이 빈틈없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문, 너마저 날 외면하는가 싶어 계단에 앉아서 순순히 열어주길 기다렸다. 절차와 경계와 통과와 단절이 몸에 밴 문이 그냥 열어줄 리 만무한데 나는 객기를 부리고 있었다. 그 터무니없는 신경전을 멈추게 한 것은 기다림에 지쳤을 마누라 전화였다.

    한 대 걷어 차버릴까 하다가 문도 사람처럼 가끔은 기다림에 지칠 때도 있겠거니 싶어 관두었다. 그렇다고 빌어먹을 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들어올 수 없었다고 마누라한테 곧이곧대로 일러바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술을 잔뜩 마신 지난밤의 일이었다.

    개처럼 신문을 지키고 있는 문과 눈을 마주칠 수 없다. 신문을 읽고 있어도 문이 자꾸 마음에 쓰인다. 불가(佛家)에서는 찰나의 순간에도 900번의 생각이 바뀐다고 한다. 사소한 것에도 갈등하고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을 닫아야 할 때 열어두고, 열어야 할 때 닫아두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 끊임없이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선택과 판단 그리고 타협과 포기를 통해 나에게 결정을 강요하고 있는 마음. 때론 그 마음끼리의 치열한 경합이 나로 하여금 나를 망설이게 만든다. 염색이나 할까, 아니 그전에 쓰린 속을 먼저 달래야 하나, 아니 그전에 눈꼬리가 올라가 있는 마누라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하나, 아니 그전에 또 그전에.

    문, 마음에도 문이 있다. 그 문의 주인이 열어주기 전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문. 그것이 마지못해 여는 것이라 해도 마법처럼 오직 그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삐딱하게 굴다 대패 같은 한숨에 깎이고 나서야 열리는 문, 찾아갈 때마다 텅 빈 마음 들킬까봐 돌려세우는 문, 엿들은 말을 경솔하게 고자질하는 문 등 세상엔 똑같은 마음의 문이 하나도 없다. 애초부터 문을 제 마음에 꼭 맞춰 골라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만만치 않겠지만 길들여서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내 마음의 규격조차 몰라 마음을 문에 맞춰 가며 살고 있다.

    마음도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즉 문을 닫고 갇힌 듯 틀어박혀만 있으면 깁스를 오래한 것처럼 마음의 근육이 쪼그라들고 끝내는 마음의 뼈마저 굳고 만다. 문을 닫고 사는 사람은 나가기 위해 닫아둔 것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안이 자주 불안하고 허전해지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혼이 피폐해지고 급기야 육신마저 망가지는 일이 아주 없다고 하진 않을 것인 바, 문을 열어 ‘이해’로 환기하고 ‘배려’로 햇볕을 들여놓아야 한다. 시건장치 치렁치렁 달아놓고 문단속하는 것은 자신에게 만만하거나 고분고분한 사람만 들여놓겠다는 말과 진배없다.

    문은 열려 있어야 할 때 잘 열리고 닫혀 있어야 할 때 잘 닫혀야 제대로 된 문이다. 마음도 제대로 써야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 주고 고통 받는 일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법이다.

    좋은 옷을 입기 전에 먼저, 몸을 깨끗이 닦아야 하고, 몸을 청결히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제대로 닦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사이 웬만해선 말을 않는 자식의 문 앞에 나는 지금 서 있다. 마음이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하는 사이 문 안에서 기척이 들린다.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당신은 지금 누구의 문 앞에 서 계신지요?

    박기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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