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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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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여성들의 안전- 김진백(시인)

  • 기사입력 : 2016-06-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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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죄가 잦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사람들이 한동안 떠들썩했다. 범죄와 맥락이 어긋난 방향으로 남혐, 여혐 거리며 부질없이 헐뜯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경남지역 중 창원에도 무학산 살인사건이 발생해, 등산객의 주를 이루는 어머니뻘 세대가 불안에 떨기도 했다. 이번에는 신안의 젊은 여교사가 학부형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여성들의 안전이 자꾸 위협받는다. 물리적으로 힘이 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는 특히 더 악질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동안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신상을 왜 지켜줘야 했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신안 여교사 성폭행사건을 지켜보며 이해가 됐다. 범죄자의 남은 삶을 존중해서 신상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죄 없는 아이. 성폭행 피해자의 제자임과 동시에, 성폭행 가해자의 자식이 돼 버린 아이. 여기서 가해자의 신상을 낱낱이 드러내어 버린다면, 결코 넓다고 말할 수 없는 신안의 지역사회에서 그 아이가 보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라 부르던 사람에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현실. 이 사실로 그 학생은, 자랄수록 점점 더 모질어 올 것만 같은 미래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멀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하면 숨길 수는 있을 것이고, 점차 세간의 관심도 수그러들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라면 아버지의 경악스러운 범죄와 그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를 용서하지 못하고, 앞으로 선생님이라는 단어 앞에 이유 없이 눈을 낮추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학부형에 대한 성범죄를 걱정해야 될 만큼, 교권이 바닥을 향한 지 꽤 오래 지났다. 이번 신안 여교사 성폭행사건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학교와 학원은 같은 배움의 장이다. 둘의 차이점은, 학교에서 아이들은 하루의 절반 가까이 동안에 선생님의 언어와 행동을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개인적인 소양을 쌓아 간다는 것이다. 내가 지내온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은 여교사들이 모두 나이대가 지긋한 40대에서 50대를 이루고 있었다. 여전히 초등학교에는 젊은 여교사가 귀하다. 가르친 아이들보다 앞으로 가르칠 아이들이 더 많은, 기존의 젊은 여교사들이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분노하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교단에 나서는 힘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한편으로 신안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다른 도서벽지의 교사들에 대한, 만일에 대비한 피해를 막으려 하고 있다. 도서벽지의 홀로 지내는 관사에 경비 시스템, 감시카메라를 부착하는 등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안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관사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가게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젊은 여교사 혼자 지내는 관사가 범죄에 있어 위험하지만, 단순히 관사를 보완하는 일만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단번에 일으켜 세우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이미 묻힐 대로 묻혀 버린 교권을 다시 제 위치로 불러오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무너진 교권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신안에 일어난 참극은 잘못된 일이 분명하고, 어떠한 처벌과 보상으로도 한 젊은 여자의 인생을 위로해 주지 못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쉽게 죄만을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해자들은 죗값에 응하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피해자인 젊은 여교사가 얼른 회복돼 일상을 되찾길 바란다.

    김진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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