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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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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애쓴 미소에 환한 미소로 속아주자- 김진백 (시인)

  • 기사입력 : 2016-05-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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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 바다에 그늘이 핀다. 흘러간 볕들이 숨은 섬을 찾아갔다. 겨우 돌아온 이들을 곡소리에 묻혀 차마 반기지 못했다. 지난 4월 16일은 세월호 2주기였다. 한 달이 지나고 화목을 도모하는 오월이 왔다. 잊지 않겠다던 사람들은 얼마나 잊지 않았을까. 마산의 학교에 교육실습을 나왔지만, 첫 출근부터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버렸다. 교사가 돼 다시 찾은 학교에는 텅 빈 교실이 너무 많았다. 학생들의 손을 탄 학교는 며칠만 비워져도 혹여나 하는 걱정이 자꾸 생겼다. 잠시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단원고의 애잔한 사연에 자꾸 빨려들었다. 아이들은 절대 죽음과는 거리가 멀어야 했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근황 인터뷰를 중심으로 만든 웹툰 ‘나는 단원고에 다녔어요’는 생존 학생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들은 잊어둔 부위를 생채기로 자꾸 실감해야 했다. 세월호 사건이 지나고, 안산 어느 정거장에서 다시 등교하는 생존자에게 아주머니가 ‘학생도 혹시…’하며 걱정을 시작하면 버스를 기다리는 주변 사람들의 초점이 학생으로 몰린다. 함부로 그만하라고 말할 수 없다. 진심 어린 대못은 가볍게 박힌다. 그렇게 2년, 참사를 수식하는 후폭풍에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은 지금 대학생이 됐다. 새내기의 첫 봄을 만끽할 나이. 내가 그 학생들이라도, 친구 잃은 기억으로 더 이상 조명당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친구의 죽음을 간직한 채 다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새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잘못은 없지만 밝히기 따끔한 과거에 대해 고민한다. 제 나이 때 누려야 할 것을 누리는 보편의 행복 대신 ‘너는 괜찮니?’라는 꼬리표를 가진 아이들은 앞으로 더 잃을 것들이 남았다. 세월호 사건에 관한 움직임들이 많다. 그러나 단원고 아이들은 보상이 아닌 구호가 필요하다. 특별한 도움보다 먼저, 친구를 두고 탈출한 기억으로부터 탈출시켜 줘야 한다. 이제 그만 보통의 일반인, 우리 주변인으로 놓아 주자. 우리 애도의 역할은 그들이 슬픔에 신경을 완전히 꺼뜨리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

    지금 단원고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학원을 가거나 할 때, 사람들은 그들의 교복을 보고 세월호를 상기한다. 바깥을 보고 사람을 이해하려는 눈길, 위로하려는 시선은 굴곡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대할 기회가 온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 전에 ‘반갑다’는 최소의, 기본적 눈길로 대하자. 말하지 않아도, 웃어도 그들은 아프다. 무분별한 격려가 부담돼 멋대로 울지 못한, 그들의 애쓴 미소에 환한 미소로 속아 주자.

    일방적 위안과 막무가내 위로는 겨우 굳으려는 상처 딱지를 들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상에서 낯선 이들의 불쑥불쑥 들어오는 동정은 부담이 되지 않을까. 이제 그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평범을 되찾는 데 집중하길 빌자. 잊지 않고 꾸준한 슬픔은 겪어 보지 못한 우리들의 몫이 돼야 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좋지 않고 안일한 기억은 점차 지워 가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큰일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그들에게 동정보다 친구로 다가가자. 슬프도록 설정된 세계와 계속 마주해야만 하는 이들. 우리는 사건을 낱낱이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에 있어, 다 알고 잊지 말고 모른 척 평범한 행복을 도와 주자.

    김진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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