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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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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포기하는 용기- 김진백(시인)

  • 기사입력 : 2016-04-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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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좋아하던 내 친구는 대학 졸업 후 노량진 고시생이 됐다. 삼수 끝에 명문대에 입학한 군 동기는 돌연 자퇴를 했고 경찰학원을 다닌다. 저마다의 가치에 따라 지나온 길을 자르고, 더 나은 길을 택해 가고 있다. ‘젊은데 왜 쉽게 꿈을 접는지, 애써 이룬 일을 버리고 꼭 ‘보통’의 길을 향해야 하는지’ 하는 실망의 시선들. 대중매체에서는 ‘청춘이여, 꿈꾸라, 도전하라!’ 는 식의 메시지를 뿌린다.

    그 가슴 뛰는 일을 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해외여행도, 그럴 듯한 연애도 마땅히 경험하지 못하고 책상에서 전공서적을 뒤적이는 친구들. 이제 인문학 책을 읽어야 세상을 넓고 멀리 볼 수 있다는 핀잔까지 들으며, 결백한 죄인이 된다. 그런 요즘세대를 N포 세대라고 부른다. 달갑지 않은 단어지만 나는, 지금 여러 가지 욕심을 버리면, 나중에 큰 꿈을 이룬다는 뜻으로 읽고 싶다.

    어제는 친한 형을 만났다.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한 형은 딱 1년만 소설에 미쳐 보자며 휴학을 했다. 그리고 올해 작가의 꿈을 한 뼘 접고 돌아와 마케팅을 배우고 있다. 스스로만 오래 확신한 꿈은 주변에 독이 될 수 있다. 2016년도 신춘문예 당선자가 모두 발표된 후, 형은 며칠간 울었다. 이별의 눈물은 다른 사랑으로 훔칠 수 있지만, 끝난 꿈 포기의 눈물은 다른 성공으로 닦아낼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응원하는 방관자였다. ‘그래봐야 글이지만, 그래도 글이다’고 하려다 잔인한 느낌이 들어 말하지 못했다. 명랑한 꿈이 뜯겨 지혈도 없이 아문 상처를 가진 사람의 포기 선언, 그 속에는 절실한 노력보다 깊은 슬픔이 내재한다.

    한 달 전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이슈가 된 바둑9단 이세돌 고수의 스승인 조훈현 고수. 그는 일본인 스승 세고에 겐사쿠와는 전혀 다른 기풍의 바둑을 선보인다. 왜 그렇게 다르냐는 물음에 그는 ‘대단한 길이라도 내 길과 다르다면 아낌없이 내쳐라, 버릴 것을 버려야, 지킬 것이 보인다’고 했다. 모두가 존경하고 인정받는 자리라도, 감당하기 버거운 길이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봉위수기(逢危須棄)의 자세를 무시하고, 모든 돌을 살리려는 사람은 결국 패퇴한다. 기어이 나를 완생시키려면 삭정이를 잘 골라 잘라내야 한다.

    성공과 실패는 확연히 다르지만, 성공과 포기의 무게는 같다. 그 어떤 성공도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 얻은 것이다. 꼭 등가교환처럼. 어중간한 노력이 아닌 모든 걸 내던진 도전 끝에, 좌절해 꿈을 포기하는 일. 간절한 것을 포기하는 데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주변의 기대가 비난으로 바뀔 것을 감당할, 용기를 가진 ‘포기자’들은 자신의 바람을 버리고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이루지 못한 희망을 고집할 수는 있겠으나, 가족과 주변의 한숨에 스스로, 꿈을 저버린 사람들. 미완의 꿈을 묻고, 구멍 난 현실을 계산하는 용기. 그들의 빛나지 못한 포기를 두고 힘내라는 말보다는, 그만 쉬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영원히 필패할 인생은 없다. 성공의 반대말은 다른 기회다. 지금은 접어두고 한발 물러섰지만 얌전히, 집착하며 다시 꿈을 두드려 보는 자세를 가지자. 고난 앞에서 냉큼 뒤돌아서지는 말자. 멀어도 참고, 빙글 돌아서 가자.

    김진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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