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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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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신명과 사랑과 화합의 큰 굿, 줄다리기- 김일태(시인)

  • 기사입력 : 2016-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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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세시민속의 5분의 1은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열리는데, 그 가운데서도 규모와 내용면에서 가장 중심적인 행사는 줄다리기이다. 창녕 영산을 비롯해 창원, 진주, 의령, 밀양 등 우리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매년 다양한 형식으로 대형 줄다리기가 행해지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 큰줄다리기는 학교 운동회 때처럼 순식간에 힘을 겨루는 놀이가 아니라 수천명이 동·서 두 편으로 나눠 150여m에 달하는 거대한 줄을 잡고 사나흘간이나 힘을 겨루는 대규모 행사다. 그 긴 여정 속에 규모가 작은 골목줄다리기와 서낭대싸움, 풍물패 공연은 물론 집안의 번성과 풍년을 기원하는 각종 비손풍습 등 온갖 놀이들이 포함돼 있어 하나의 큰 굿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경건한 분위기의 설날을 넘어서면서부터 고을의 분위기가 달이 부풀어가듯 대보름날까지 신명이 고조돼 갔다.

    풍년을 기원하는 공동체놀이이자 성(性)숭배 축제인 줄다리기는 우리의 정통 농경 민족문화를 이해하는 데 총체적이고 상징적일 만큼 중요하다. 줄을 당기는 그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전 과정에 우리 민족 특유의 화합과 배려, 신명과 사랑의 철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를 준비하는 데 가장 처음은 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줄꾼들은 줄 만드는 과정을 두고 ‘줄을 꼰다’고 하지 않고 ‘줄을 들인다’라고 한다. 거대한 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배당된 짚을 모아 합심해서 물과 소금을 뿌려가며 정성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몸줄은 낱줄 100여 가닥을 엮은 뒤 다시 덕석처럼 말아 한 묶음으로 만들고 여기에 잡아서 당기기 쉽도록 가늘게 꼰 벗줄을 지네발처럼 묶는다. 줄 머리는 암줄과 숫줄 형상이 되도록 둥글게 말아 굵은 나무로 비녀질해 서로 맞대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든다. 큰 줄의 몸줄은 대략 2만여 가닥의 짚으로 뭉쳐져 있다. 이렇게 정성들여 만든 줄은 대보름을 앞두고 행사 장소인 넓은 데로 옮기는데, 풍물꾼들의 노래와 함께 줄꾼들의 어깨에 얹혀 용틀임하듯 장관을 연출해낸다.

    줄 당기는 과정은 암줄과 숫줄의 교합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종의 남녀 간 구애 행위에 해당된다. 비녀질하는 이때가 사랑과 투쟁, 결합과 대립의 양면성과 함께 음양의 조화가 극적으로 표출되는 순간이다.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듯 두 줄의 비녀질이 끝나면 양측 장수들의 지휘에 맞춰 거대한 함성과 함께 줄 당기기가 시작된다. 승패가 결정되면 모두 만세소리와 함께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춤판을 펼친다. ‘동편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서편이 이기면 자손이 번성한다’는 식이어서 어느 편이 이겨도 상관없다.

    짚 한 가닥이 지탱할 수 있는 무게는 2.5㎏쯤인데 두 가닥을 꼬면 7~8㎏, 세 가닥을 묶으면 12㎏ 이상을 버텨낸다. 이것이 바로 뭉치면 초월적인 힘을 창출하는 대동단결의 철학이다. 줄다리기 경기는 뒤로 물러나야 이긴다. 상대에게 쳐들어가 제압해야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들이고 양보하고 포용해야 이기는 배려의 정신을 담았다. 이 정신을 인정받아 줄다리기가 유네스코의 무형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줄다리기로 상징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민속축제 정월대보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권과 목적을 달리하는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으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들로 시끄러운데 우리지역 곳곳에서 열리는 줄다리기 현장에 모두 참여해서 체험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김일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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