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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깎되 깎지 않은 아름다움- 김일태(시인)

  • 기사입력 : 2016-0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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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지역 원로문인인 이우걸 시인은 <아직도 우리 주위엔 직선이 대세다>라는 시를 통해 ‘직선이 굳으면 칼날이 된다’고 하고, 다른 시 <관계>에서는 ‘빗금이 되어서라도 부딪히고 싶진 않았다’라며 직선적인 현대인들의 삶에 강한 메시지와 함께 극복의 방향을 제시했다.

    각은 세우면 칼날이 된다. 또한 멀리서보다 가까이에서 세울수록 더 예리해진다. 그러나 각을 눕히면 상대를 받들고 배려하는 모양이 된다. 눕히면 눕힐수록 더 부드러워진다. 세운 각은 상처를 만들지만 눕힌 각은 부드럽게 대상을 다듬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작년 한 해 창원과 서울에서는 ‘빛과 맥, 백 년 그대로’라는 주제로 김종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들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창원이 배출한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선생의 예술세계와 정신은 한마디로 ‘불각(不刻)의 미(美)’로 압축된다. ‘깎되 깎지 않은 것 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상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장점은 물론 존재 자체를 존중한다는 고귀한 정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정신을 바탕으로 선생은 여백의 아름다움과 불균형의 균형, 부조화의 조화를 작품에 담아내려 했다. 이 예술철학은 조형예술창작의 기법을 넘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정치판을 필두로 요즘 우리 사회는 서로 각을 세워 깎거나 깎이면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행정과 교육이, 이념의 틀에 갇힌 단체와 단체끼리, 때로는 같은 편끼리도 이해를 좇아 각을 예리하게 세우고 있다. 감히 근처에 얼씬거리다가 엉뚱하게 베어 상처라도 입을까 봐 두려워서 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별스런 처방도 있어 보이지 않고 책임지려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자기의 방식대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이 사회와 나라를 온통 조각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각은 세우면 세울수록 더 날카로워지고 그 각이 지나간 자리는 날카로운 만큼의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상적인 정치란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최소한의 서비스이며 사회단체 또한 그 집단의 권익을 추구하되 공공의 선(善), 사회의 정의(正義)라는 큰 틀을 넘어서 존재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직선적인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연의 순리, 자연이 자리매김해주는 절대적 가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런데 직선적 삶이 마치 지고지순의 가치처럼 포장되어서야 되겠는가?

    ‘깎되 깎지 않은 것 같은 아름다움’의 추구,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소재가 각기 품고 있는 고유의 물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김종영 선생의 이 철학으로 이 시대 분열과 갈등의 주범인 ‘책임지지 않는 억지 떼 문화’를 극복해낼 수 없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자연의 그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할 때 완성된다고 했다. 각계가 조금씩 억지 부림을 버려 ‘깎되 깎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순리로 제각기 각을 눕히고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여 새해에는 서정성 넘치는 평화와 안식이라는 작품 하나 만들어냈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고난이 클수록 기적은 가까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김일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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