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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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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의 새해맞이- 성선경(시인)

  • 기사입력 : 2016-01-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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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새해가 밝자마자 학생 38명을 이끌고 강진을 다녀왔다. 유홍준 교수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밝힌 남도기행의 일 번지를 새해 해맞이의 설렘이 가시기 전에 다녀왔다. 이는 학교 교육과정에 있는 문학기행 행사이다. 먼저 강진의 무위사와 김영랑 생가를 들렀다가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찾았다.

    내가 다산초당을 찾아가는 길은 이번을 포함해 네 번째다. 이날 초당을 찾아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로 조용하지는 않았다. 내가 다산초당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마음이 묘하게 울렁거린다. 늘 마음이 경건해지고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초당 가는 길 초입에 있는 다산선생의 제자 해남윤씨 묘에 참배를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내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내가 새로 맞이한 병신(丙申)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이리저리 계획을 세우며 생각에 잠겼다. 함께 간 일행들과도 한 걸음 떨어져 내 마음의 울렁거림을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돌멩이 하나, 나무뿌리 하나, 다 마음에 와 박혔다. 지난 일을 반성해야 할 것도 많고, 새해의 소망도 많았다. 아! 너무 어지러운 내 마음이여.

    초당에 올라서니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함께 동행한 문화해설가가 학생들을 초당 마루 앞에 불러 앉히고 다산선생의 초당 시절과 유배 18년의 행적을 설명하고 있었다. 18년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배경과 외가인 해남윤씨 가문의 도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러 번 듣는 이야기지만 나도 다시 귀를 기울여 들었다.

    초당의 서편 바위에 새겨진 정석(丁石)이란 글귀를 보며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을 해보니 18년 동안 500여 권의 저서를 저술하려면 한 달에 두어 권의 책을 써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늘 이러한 초인적인 저술이 가능한 일은 세상에서 자신을 유폐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했다. 세상에서 자신을 유폐시킨다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작년 유월, 내가 28년의 교직생활을 끝맺기 위해 명예퇴직서를 내고 맨 처음 한 여행이 함안이었다. 30여 년을 함께 시를 써온 이달균 형에 이끌려 함안의 무진정과 채미정과 고려동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함안의 무진정과 채미정과 고려동은 모두 자신을 유폐시킨 자리였다. 나는 이 유폐의 자리에서 선비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사람은 대개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다. 물러날 때 잘 물러나는 것이야말로 오래 그 향기를 지키는 법이다. 세상에 이름난 선비나 속세에 묻혀 있는 촌부나 그 법도는 다를 바 없다. 이제 나도 오십대 후반, 몇 년 후면 한 갑자를 넘기게 된다. 나에게도 아주 조금의 향기가 묻어나기를 나는 희망한다.

    길은 어느새 초당을 지나 백련사를 향하고 있었다. 함께 간 아이들은 길이 멀다고 투덜거렸으나 백련사 가는 길은 호젓하고 좋았다. 다산선생의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어줘 준 것이 이 백련사 가는 길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아침 이슬을 털며 걸어도 좋고, 달빛을 받으며 별 아래 걸어도 좋으리라. 나는 아직 한 번도 이 길을 내 아들과 딸과 함께 걷지 못했다. 언제 정말 날을 잡아 함께 걷고 싶었다. 혹시 내 아들과 딸도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려나. 사람아, 아! 사람아.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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