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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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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딸에게 바란다- 박서현(수필가)

  • 기사입력 : 2015-12-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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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붓한 구절초 꽃 무리가 밤새 환한 등불을 켜 들더니,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기대어 이슬을 말리고 있는 아침 나절, 온통 물든 늦가을의 정취를 따끈한 커피 잔에 담은 창밖 풍경엔 눈길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향기가 배어 있다. 이맘때가 되면 왠지 마음이 쓸쓸해지던 어느 날, 화장대 위에서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 결혼적령기에 있는 딸아이가 글로 쓴 10여 장이나 되는 두툼한 편지, 말로 전하지 못하는 속마음으로 간곡한 청을 남긴 것이다. 겉봉투에는 ‘어머니 아무리 바쁘셔도 꼭 읽어 주세요’라고 또박또박 쓴 봉투를 받아든 순간 마음은 성급하게 내용 속으로 달려갔다. 내용인즉슨 남자친구를 만나 봐 달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시는 어머니 사랑을 이해하지만, 염려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둘의 결혼을 결국은 승낙해 달라는 말을 한 것인데, 참으로 글이 주는 자신감 넘치는 내용이었다.

    어느 부모인들 제 자식 귀하지 않을 텐가. 한참 꽃 피울 결혼 적령기에 딸아이 부모로서 멋진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진대, 늘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못한 엄마에게 비장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미더운 청년을 왜 선택하게 됐는가 조목조목 적은 내용을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철부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갖게 됐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그들은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둘만의 사랑은 유별났다. 그해 연말이 다가오면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남편에겐 시계는 있지만, 시곗줄이 없어 손목에 차고 다니질 못했다, 그런가 하면 부인은 금발 머리에 꽂을 머리핀 살 돈이 없어 언제나 머리를 넘실거리며 풀고 다녔다. 이들 부부에게도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축복의 날이 다가왔다. 서로는 항상 마음에 걸려 있던 터라 가장 필요한 선물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남편은 아내의 머리핀을 예쁘게 꽂아주고 싶어, 줄이 없는 시계를 팔아서 머리핀을 샀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시곗줄을 선물하고 싶어 금발 머리를 정성스레 자르고 그것을 팔아서 시곗줄을 샀다. 그날 부부는 기쁘게 준비한 서로의 선물을 확인하는 순간 놀라움과 감동으로 정적이 흘렀다. 결국은 시계도 머리핀도 서로에게 필요 없게 됐지만, 사랑을 확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기에, 감동의 눈물로 함께했다는 줄거리다.

    사랑의 힘이란 어떠한 고난도 함께하면 이겨낼 수 있기에, 여식이 어렵게 말하는 남자친구도 그처럼 아름다운 반려자였으면 한다. 또한 부모가 바라는 결혼조건을 짚어본다면, 건강한가, 부지런한가, 절약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가, 삶의 꿈과 목표를 갖고 있는가, 끊임없이 노력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짧은 기억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때때로 삶이 힘들고 괴로운 일들은 머릿속에서 빨리 잊고,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 생활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또한 애급옥오(愛及屋烏)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도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그 말이 욕심처럼 떠오른다.

    딸의 편지에 답해 본다. ‘딸아, 서로 후회 없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네 편지글에서, 심장이 타들어 갈 만큼의 감정을 실었던 너의 마음이 진실이라 믿는다. 그래서 힘차게 맞물리며 회전하는 두 바퀴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너의 행복을 위해 네 그 마음을 승낙해야겠구나.’ 지금 창밖에는 낙엽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흩어진다. 이렇듯 내 마음이 쓸쓸해지는 이유는 이 가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니….

    박서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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