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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뒷기미 나루터의 애환- 박서현(수필가)

  • 기사입력 : 2015-1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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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의 젖줄인 1300리 낙동강은 수많은 나루터의 애환을 전설처럼 간직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밀양시 삼랑진, 그곳은 역사와 문화가 산재해 있는 고장이다. 삼랑, 후조창, 뒷기미, 작원나루 등은 영남의 세곡을 모아 바닷길로 운반해주는 수운교통의 중심이었다. 나라의 관로인 영남대로가 이런 요충지를 지나는 곳이며, 영남대로의 벼룻길인 작원잔도(鵲院棧道) 일부가 지금까지 석축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삼랑진역의 명물로 사랑받고 있는 급수탑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으며, 근대문화유적지인 일본제국주의 수난이 스민 비행기 격납고는 방치돼 있어 안타까움이 인다.

    그중에서 잊어서는 안 될 내 고향 ‘뒷기미 나루터’를 꼬집어서 들춰 본다. 부산 하구언에서 역류하는 바닷물과 낙동강 상류에서 흐르는 물, 밀양강 본류, 세 갈래 물줄기가 합해지는 곳이라 삼랑이라 부른다. 때문에 ‘뒷기미 나루터’는 강 건넛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낙동강 유역의 상권을 주도해 온 모든 나루터는 현대화의 물결로 지금은 강물 위에 다리가 편리하게 놓이면서 급속도로 빛을 잃고 쇠락했다. 나아가 뒷기미 나루터도 나룻배 대신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달리게 되면서 옛 모습은 차차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무성한 잡초들이 강변을 쓸쓸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해 질녘이면 붉게 물든 노을이 나루터를 지나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하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기도 한다.

    저 멀리 강 건너 백산, 동산, 평촌 마을의 아들딸들이 일본군의 위안부나 징용으로 끌려가던 피눈물의 사연이 배어 있는 ‘뒷기미 나루터’는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이 암울한 시대의 삶을 소설화시킨 배경지이기도 하다. 선생은 1936년 신춘문예(사하촌)에 당선됐으며, 일제 말기에 문단 활동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하신 분이다. 그의 ‘뒷기미 나루터’ 소설의 내용을 잠시 언급해 보면, 순박한 박 노인 가족에 대한 비극적인 애환, 식민지시대의 모순과 분단 시대의 병폐가 결합해 민중의 수난을 그려낸 작품이다. 지금은 점점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뒷기미 나루터의 애환을 그는 이렇게 읊조렸다. 뒷기미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우리 님 오시는데 마중 갈까나/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임을랑 보내고 난 어찌 살라노/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뒷기미 나루터’ 시를 읽노라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선조들의 가난한 어촌민의 생활과 수난을 생생하게 부활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나루터엔 체험장 조성, 낙조 전망대, 공원조성사업, 소설 속의 조형물을 통해 ‘뒷기미 나루 배경지’를 만들어 문화유산으로 새길 수 있었으면 한다. 더구나 4대강 조성사업으로 인해 낙동강 자전거 종주길이 이곳을 통과하게 되는데, 주말에는 자전거 이용객들이 몰려들어 지역 명품코스가 되고 있다. 이러한 나루터의 소중한 자원을 잘 활용한다면 지역경제는 물론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광복도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왜정 36년 눈물의 한이 지워지지 않고 있는 이와 같은 나루터를 역사의 현장으로 조성해 향토문화의 장으로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줘야 할 것이다.

    박서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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