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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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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꽃들에게 희망 주는 나비처럼

  • 기사입력 : 2015-10-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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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진해 영광교회 목사)


    40여 년 전, 필자의 20대 때 인생관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한 권의 책이 있다.

    ‘트리나 폴러스’의 저서인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이다. 어린아이들이 읽는 만화 같고 그림책 같은 작은 책이다. 그러나 다소 방황하던 당시의 필자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 여운은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계속 생각 속에 남아 있다.

    내용인즉, 어떤 나비 애벌레가 다른 모든 동료들이 올라가는 높은 기둥을 혼신의 힘으로 이전투구하며 올라가서 정상을 정복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가 꿈꾸며 올라오며 기대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 정상의 자리가 너무 협소해서 밀려 떨어지는 애벌레들로 인해 지옥 같은 투쟁이 있을 뿐이었다. 실망한 애벌레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해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자신과는 달리 나비가 되는 길을 택했던 연인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자신을 인도하게 된다. 결국 자신도 나중에 수많은 애벌레와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보면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은 기둥의 정상인가? 아니면 나비가 되어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길인가?”라고. 목회적 일은 분명히 나비의 꿈이며,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또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끔 한 번씩은 기둥의 높은 정상에 대한 미련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솔로몬은 높은 기둥의 소망으로 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도다.”(전도서1장 14절) 모든 정상에 자신이 직접 올라 보니 아무것도 없는 헛된 바람만 불더라는 솔직한 고백이다. 또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후대에게 조언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은 어떠할까? 거의 모든 이들이 부귀영화의 정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솔로몬의 분명한 경고에도 여전히 세상은 그 허무한 정상을 향해 계속 오르고 있다. 예를 들면 오늘도 계속되는 정치권의 공방전이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어나는 각종 사고와 사건들이 그렇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수많은 의문부호를 던져보지만 대답은 시원치 않다. 단지 ‘기둥 위의 정상에 대한 미련 때문은 아닐까’라고 추측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이러한 관점에서 나 자신은 과연 어떠한가를 돌아본다. 60여 년의 세월 속에 극히 부분적으로는 정상(?)에 서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실망과 함께 ‘내려놓기’와 ‘내려오기’를 결심하고 지금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솔직한 지금의 나의 소원은 높은 기둥 위의 바람 부는 정상이 아닌, 자신의 본질적인 꽃을 피우기 위해 수고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내려오기도 힘들지만 희망주기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한 마리의 좋은 나비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드린다. 이정희 (진해 영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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