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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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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합창- 박형권(시인)

  • 기사입력 : 2015-09-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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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본질은 조화와 절제다. 무수한 생명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먹고 먹히며 살아가지만 넓은 시선으로 보면 어울림의 한 방식이다. 갑자기 어느 한쪽의 개체수가 불어나면 자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수위를 조절한다. 그것이 자연의 절제 기능이다. 자연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인간도 그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연을 모방하기 좋아하는 인간은 조화와 절제를 정치적 기술에 대입시키는가 하면 학문과 예술에도 가져와서 썼다.

    나는 음악을 주목한다. 음악에 문외한이긴 해도 자연의 본질을 합창에서 찾는다. 합창을 할 때는 다양한 음계를 가진 목청들이 부단히 조응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목소리라도 하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

    왜 우리는 조화로워야 하고, 왜 우리는 절제해야 하는가? 우리가 자연에서 왔고, 의 피를 가졌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의 몸 안에 우주가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나는 우주까지는 아니라도 우리 몸 안에 자연이 있다는 정도는 느낌으로 안다.

    벌써 가을이다. 나는 지금 서울에 있다. 조금 전 밤 열한 시에 가까운 인공숲에 갔다 왔다. 캔커피를 사서 숲 입구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터져 나오는 귀뚜라미 소리에 잠시 정신이 아뜩했다. 베토벤의 <합창>은 저리 가라였다. 가만히 들어보면 뚜르르 뚜르르 하는 녀석도 있었고 똘똘똘 하는 녀석도 있었고 또렷또렷 하는 녀석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귀뚤귀뚤 하는 소리로 수렴됐다. 그렇게 다양한 소리들이 지휘자도 없이 조화로운 합창을 연출하고 있었다. 또한 정갈한 한 폭의 동양화처럼 절제가 있었다. 합창의 전제조건은 모임이다. 모여서 뭔가를 도모하는 것인데, 그것이 음악이라면 이 세상 얼마나 괜찮은 곳인가? 나는 몇 년 전 마산의 초여름 밤을 떠올렸다.

    그날 경남대학교 근처에 있는 친구 집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자정을 넘겼다. 집이 덕동이라 택시를 타야 했다. 늦은 시간에는 기사분들이 덕동까지 가는 것을 꺼렸다. 안전으로 보나 수익으로 보나 시내를 뱅글뱅글 도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나는 ‘따블’로 주겠다고 V를 내보이고서야 택시를 잡았다. 기사분이 연세가 많아 보였다. 가포를 지나고 가포초등학교 앞에서 나는 급히 차를 세웠다. 갑작스런 내 요구에 기사분이 어리둥절했다.

    내가 차를 세우게 한 것은 반쯤 열린 차창으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였다. 아저씨 딱 3분만 세워주세요. 나는 택시에서 내려 개구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개구리 소리는 가포초등학교 옆 무논에서 들려왔다. 식용으로 들여온 황소개구리 소리는 아니었다. 개굴개굴 토종 참개구리 소리였다. 거기서 몇 발만 가면 가포본동이다. 본동 사람들은 개구리 소리를 들어서 좋겠구나. 잠이 잘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차를 세우게 한 것은 술기운이었다. 연세 많은 기사분은 10분 넘게 택시를 세워두고 있었다. 이제 가지?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차에 올랐다. 저 자연의 합창, 본동도 곧 개발될 텐데 어쩌면 마지막으로 듣는 개구리소리일지도 몰랐다. 덕동에 도착했을 때 기사분은 차비를 ‘따블’로 받지 않았다. 사는 게 바빠서 개구리가 우는지 올챙이가 우는지…. 못 들은 지가 십 년은 됐어. 듣게 해줘서 고맙네. 기사분과 내가 통하게 된 건 합창의 힘이었다. 자연의 본질이 우리 속에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모여서 합창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목적이 무엇이냐일 뿐.

    박 형 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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