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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잊혀가는 경남 항일운동지를 찾아서

피맺힌 함성 대한독립만세 그날의 흔적

  • 기사입력 : 2015-08-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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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로 전락한 지 36년 만에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은 날이다.

    그로부터 70년, 강산이 7번이나 바뀌면서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면서 광복(光復)의 의미도 점점 흐릿해졌다.

    오히려 광복을 찾은 지 7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 식민지시대의 잔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남아 사실상 ‘미완의 광복 70년’에 그치고 있다.

    요즘 세대에게는 ‘해방’. ‘광복’, ‘항일’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나 나옴직한 머나먼 기억으로 광복의 의미가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제 없는 오늘이 없듯이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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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판이 없어 찾기 힘들었던 창녕군 영산면 남산공원의 3·1독립선언서탑./전강용 기자/
    수많은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워야 했던 처절한 역사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내 곳곳에서도 의병활동을 비롯해 각종 항일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항일투사들의 피로써 나라를 되찾았지만 정작 광복 이후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나 역사적 보존은 관심이 적었다.

    도내에도 일부 지역에 기념탑이나 기념비 등이 있기는 하지만 표지판도 없이 쓸쓸하게 방치된 곳이 많다.

    당시 절실했던 독립운동의 현장은 세월 속에 묻히면서 대부분 멸실했다. 3·1운동의 주거지인 장터는 현대화됐거나 사라졌고, 의병들의 전투지나 항일운동을 도모했던 장소 또한 개발되면서 대부분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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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영산면 남산공원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비./전강용 기자/
    독립기념관에서 조사한 경남 지역 내 독립운동과 관련한 사적지는 140여 개가 있지만 상당수는 사라지고 일부만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침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가적으로나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의미를 되새겨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뜨겁게 기세를 올렸던 폭염도 한풀 꺾이면서 여름의 끝자락을 보이고 있다. 들떴던 여름 분위기를 접어두고 아이들과 잊고 있던 항일의 역사의 현장으로 찾아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글=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사진 제공=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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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원동무역주식회사 터

    ◆도내 지역별 주요 항일운동지

    창원= 마산 동서동에는 조선국권회복단 등 독립운동단체에 군자금을 제공했던 원동무역주식회사 터가 있다. 2층이던 건물은 증축돼 3층으로 다소 변형돼 상가로 이용되고 있지만 표지석이 당시의 터라는 것은 알려주고 있다. 진해 남문동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이 개관했다. 주 목사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고 당시 항일상황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주 목사는 1919년 3·1운동을 이끌었고,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체포돼 1944년 옥중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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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영남포정사
    진주= 서부경남의 중심지인 진주는 의병과 학생운동 등 다양한 항일운동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났고, 형평운동 등 사회운동도 활발했다. 의병들의 본거지인 진주성에는 노응규 의병의 주둔지인 선화당 터가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형평사 창립축하식이 열렸던 진주좌터나 유생들이 동아개진교육회를 조직해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의거를 계획했던 낙육재(현 중앙요양병원) 등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지금은 모습을 볼 수 없다.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졌던 진주객사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세월에 묻혔다. 진주지역 항일사회운동의 중심지인 청년회관도 당시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표지판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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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청년회관(현 통영문화원)
    통영= 현재의 중앙시장인 부도정장터는 통영시민들이 3·1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이지만 현재 시장이 개발되면서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1928년 신간회 통영지회 창립대회가 열렸던 봉래좌 터도 현재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1919년 7월 조직된 통영청년단이 청년·문화운동을 전개하던 통영청년회관은 현재 통영문화원으로 그 형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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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다솔사 대양루
    사천= 삼천포공립보통학교 호연재(현 삼천포초)는 학생들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던 곳으로 일본이 민족혼을 일깨우는 불온사상의 소굴로 지목해 강제철거했다가 지난 2008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을 했다. 만해 한용운이 중심이 돼 결성한 불교계 비밀결사 조직 만당의 근거지였던 곤명면 다솔사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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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장유 무계장터
    김해= 김해에서 가장 많은 3000여명의 시민이 모여서 3·1만세운동을 벌였던 장유 무계리장터를 비롯해 김해장터, 진영장터에는 당시의 흔적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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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연계소
    밀양= 김원봉 등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밀양답게 항일운동의 사적지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윤세주, 최수봉, 황상규, 강인수, 고인덕, 김대지, 김병환, 한봉근·한봉인의 생가나 집터 다수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운동활동도 활발해 1908년 전흥표·황상규 등이 설립한 동화학교와 밀양의 여주이씨 문중에서 설립한 정진학교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밀양지역 국채보상운동의 결의지이자 신간회 밀양지회 사무실이었던 연계소도 3동의 기와집이 있었으나 1동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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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 탑곡 3·1운동 기념탑
    거제= 거제는 일본의 군사·어업기지로 이용되었다. 장목면 송진포는 일본의 군사기지로 사용돼 사등면 취도에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승전을 이끈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 업적을 기린 포탑기념비가 남겨져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들어선 아주장터 인근 탑골 언덕에는 3·1운동기념탑만 덩그렇게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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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서병희 생가
    양산= 엄주태와 전병건, 서병희 등 양산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과 항일운동이 잇따랐지만 당시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것이 남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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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 안희제 생가
    의령=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끌었던 홍의장군 곽재우의 정신이 어려 있는 의령은 3·1만세운동 당시 신반,덕교, 봉곡장터에서 가열찬 만세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의령은 안희제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에 백산상회를 세우고 여기서 나온 자금을 임시정부의 경비로 조달했다. 지금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 가면 안 선생의 생가가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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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 군북 3·1운동 기념탑
    함안= 함안, 평림, 칠원, 연개, 군북 냇가는 3·1운동 만세 시위지로 현재 군북냇가에는 3·1운동기념탑이 건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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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영산면 봉화대
    창녕= 창녕 영산면 남산공원에는 1919년 3월 13일 구중회, 김추은 등 23인의 결사대가 독립만세를 불렀던 뜻을 기리기 위해 3·1독립운동기념비와 독립선언서탑이 서있다. 공원 아래에서는 볼 수가 없고 계단을 오르고 올라 막다른 지점까지 가야 볼 수 있을 만큼 표지석도 안내판도 없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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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최우순의 집

    고성= 박거수 선생이 사재를 털어 고성지역 민족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철성의숙은 고성군지역 3·1운동 만세시위가 처음으로 논의된 곳이지만 당시 건물은 사라지고 논이 됐다. 천도교 신자 8명으로 만든 항일비밀결사단체인 경남결사대의 일원 노응범의 집터도 논으로 바뀌었다.

    반면 1911년 일본 왕이 내린 은사금 받기를 거부하고 음독자살한 최우순의 집이 하일면에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또 변상태, 이주현 등 경남지역 애국지사들이 기거하며 독립운동을 계획했단 옥천사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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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남해= 남해에도 포상리 천동마을과 설천면 남양리, 남해장터에서 독립만세의 목소리를 외쳤다. 이를 기념하기위해 문항리에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남해읍 남산 기슭에 남해 3·1독립운동기념비가 건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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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청년회관
    하동= 지리산을 끼고 있는 하동은 의병활동의 본고장이다. 의신마을에는 주민들이 의병들의 시신을 수습해 마을 산기슭에 매장해 의병 무덤임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칠불사는 김용구 의병장 등 서부경남 의병들의 주 근거지였다. 하동은 경남 지자체 가운데 항일운동관련 사료를 가장 잘 보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곳이다.

    하동읍내에는 하동독립공원을 조성해 항일독립운동기념탑과 독립선언서 비석을 비롯해 52명의 하동 출신 독립운동 서훈자의 조형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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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유림독립기념관
    산청= 최근 남사마을 인근에 유림독립기념관이 설립됐다. 이곳에는 137명 유림대표의 한국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파리장서 동판모형도 전시돼 있고, 유림들의 독립운동 활약을 알려주는 등 항일운동 전반에 대한 내용도 볼 수 있는 유익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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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노응규 생가
    함양= 문태수와 노응규, 문태수, 권석도 의병장들이 많이 배출됐다.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는 진주 등지에서 1만여명의 의병을 이끌었던 노응규 의병장 생가가 한옥구조물로 복원됐다. 또 항일독립지사 사적공원에는 노응규 의병장을 비롯해 9기의 순국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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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곽종석 집터·기념비
    거창= 거창지역 월성의병이 결성돼 의병봉기를 결의했던 월성서당 터에는 후대에 세운 정자와 기념비가 있다. 또 유림 지도자인 곽종석이 살았던 집터에는 그를 기리는 비가 건립돼 있다. 곽종석의 집은 1919년 3월 파리 강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의 초안을 기초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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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삼가장터 기념탑
    합천= 전국 최대 규모의 3·1 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으로 합천장터와 삼가장터, 초계장터, 해인사 일주문이 있다. 의병 김판용이 40여명과 함께 합천 순사 주재소와 우편물 취급소를 습격하며 전투를 벌였다. 이곳은 현재 합천읍사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삼가장터에는 3·1만세운동기념탑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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