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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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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때문에, 덕분에- 유행두(시인·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5-07-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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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의 탓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부모님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모험을 싫어하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는 겁쟁이 남편 때문에 불편한 생활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단체에 가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기주의적 생각 때문에 협력이 잘 되지 않는 것이며, 내 삶이 꼬이게 된 모든 일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이었다.

    많은 일을 남의 탓으로 여기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가정에서도 밖에서도 싸움이 잦았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항상 인상은 구겨져 불평이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인생은 내가 계산했던 대로 정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모험과 도전을 겁내는 남편 때문에 내 뜻을 펼친 적이 없다며 남편을 많이 원망했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이 됐다고, 내가 어떤 문제를 제안했을 때 그 일이 한 번이라도 잘될 거라고 토닥이며 희망을 주는 것보다 안 되면 어쩔 거냐는 걱정부터 하는 남편 때문에. 내 말에 한 번도 동의해주지 않고 남의 편만 드는 남편 때문에, 그래서 남의 편들지 말고 내 편 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휴대폰에 남편 대신 내편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하기도 했다.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을 일이 생겼다. 썩 좋지 못한 결과 때문에 종합병원을 전전하며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봤다. 죽음이 코앞에 바짝 다가온 거라면, 지금의 모습만이 다른 사람의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겨진다면, 나는 얼마나 불행한 삶만을 살아온 것인가. 어디서든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주장만을 외쳐대기만 했던 모든 일의 근원이 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꿔 생각해봤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대를 굶어죽지 않고 무사히 건너온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었고 그 시대를 무사히 건너게 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 가슴에 쌓인 말이 많음에도 들어줄 시간 없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은 언제나 내 글의 씨앗이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남편이 잘 호응해줬더라면 살림살이가 정말 나아졌을까를 생각해봤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같이 올라가기를 요구하는 무모한 내 말에 남편은 쉽게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빚으로 허덕이지 않아도 되었고 겉모습만 보고 덜렁덜렁 일을 저지르는 나를 대신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뒷부분까지 꼼꼼하게 잘 보아준 남편 덕분에, 모험을 책임져야 하는 남편 덕분에 그럭저럭 편안하게 살고 있었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남편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까지 무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살아온 남편 또한 나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왔음을 감사히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생각을 바꾸게 된 깜깜했던 한 달 덕분에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고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명약은 용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라 안팎 사정을 보면 나처럼 ‘때문에’를 외치는 사람이 더러 보인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하며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를 외칠 것인가. 우리 사회 모두가 덕분에 감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유행두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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