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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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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풍수지리] 누가 논개를 기녀라 하는가

  • 기사입력 : 2015-07-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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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갑술이 겹치는 1574년 9월 3일 술시(戌時·오후 7~9시)에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에서 특이한 사주를 지닌 여아가 태어났다.

    술(戌)이 개띠에 해당하므로 개를 낳았다 해 이름을 논개라 지었다 한다. ‘기녀’로 알려진 논개는 민순지의 ‘임진록’, 송병준의 ‘일휴당공신도비명’, 권적의 ‘경상우병사 증좌찬성 최공시장’ 등을 통해 기녀가 아닌 충의공 최경회의 부실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현재 충의공 최경회의 집안인 해주최씨 가문의 ‘해주 최씨 대동보’를 살펴보면 논개를 ‘의암(義巖)부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1593년 4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된 최경회는 진주성 함락의 책임을 통감하고 남강에 투신, 순국한 인물이다. 진주성 싸움에서 승리한 왜군들은 촉석루 연회를 벌이는데 이때 논개는 기녀로 변장해 적장인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해 남강에 투신, 순국했다.

    이로 인해 조선의 군·관·민의 사기를 진작시켜 호남지역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산 31번지에 위치한 논개의 묘역은 1980년대 후반 함양군의 논개 묘 성역화사업으로 봉분을 다시 만들고 비석을 세우며 새로이 단장했다. 상석에는 의암신안주씨지묘(義巖新安朱氏之墓)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묘의 양쪽에는 다람쥐가 새겨진 두 개의 망주석이 있으며 묘의 좌향 (坐向)은 자좌(子坐)로 남향이었다.

    인작(人作)으로 높게 쌓아 올린 묘역보다 더 높은 논개와 최경회의 위국충절은 이 나라의 관료들이 국민을 위해 처신해야 할 방도를 알려주는 듯하다.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는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륜(河崙·1347~1416)과 그 일족의 무덤이 있다. 묘역에는 선생의 조부모인 하시원과 진양 정씨, 부모인 하윤린과 진양 강씨의 묘가 있고 선생의 묘는 조부모, 부모 묘와 50m 떨어진 옆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다.

    하륜 선생의 묘는 팔각형의 둘레돌을 두른 특이한 형상인데 조선 초기 묘제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선생의 조부모와 부모 묘는 산등성이가 횡룡(橫龍·직각으로 틀어서 진행하는 용맥)으로 좌우요동은 뚜렷하지만 상하기복은 약하면서 묘소까지 경사가 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묘역에 박힌 돌이 많이 있으므로 지기(地氣)가 성하며 용맥이 뚜렷하고 깨끗하니 자연히 봉분을 포함한 주변 역시 단정하였다. 모친인 진양 강씨의 전순(氈脣·절을 하는 곳)은 좁지는 않으나 전순 앞의 급경사는 전순에 단단한 흙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세찬 비바람에 견딜 정도라면 암반도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4기 모두 묘소 앞에 위치한 안산(案山)은 고위관료나 재상이 나온다는 일자문성 (一字文星)의 형상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본신(本身·주산의 산등성이)이 튼튼하고 좌청룡과 우백호가 묘소를 치는 살기를 막아주므로 대체로 무난한 곳으로 판단했다. 음택(陰宅·무덤)풍수에서는 조상의 묘의 위치가 나쁜 곳, 나무뿌리가 묘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곳, 유골에 곰팡이가 피거나 유골의 색이 검게 변할 수 있는 곳, 뱀이나 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곳 등의 터를 피하거나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장사(葬事)에 유의해야 한다.

    전라도 모처에 흩어진 무덤을 모아 어마어마하게 큰 상석과 둘레돌, 비석 등의 석물을 설치해 가족 무덤을 조성한 곳에 모친이 돌아가시자 다른 곳에 안치된 부친을 같이 매장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곳은 맥(脈)과 생기가 없는 터여서 본래 있던 부친 자리에 모친과 화장(火葬)해 안치하도록 조언했다.

    파묘(破墓)한 부친의 유골은 색이 검게 변해 있었고 주변 흙의 색 또한 검을 뿐만 아니라 습했으며 명정(銘旌·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천)도 14년 전의 상태 그대로였다. 본래 괜찮은 터였으나 석관(石棺)을 해 물이 생겼으며 광중(壙中·무덤구덩이)을 너무 낮게 판 것과 봉분의 폭이 좁아 빗물이 스며든 것이 원인이었다. 이를 두고 ‘혈길장흉, 여기시동(穴吉葬凶, 與棄尸同·혈이 길하나 장사가 흉하면 시신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이라 한다. 상주가 필자의 소견에 따라 이장을 하지 않고 화장을 해 부모를 편안히 모셨으니 이것은 상주의 복이 아닐 수 없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 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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