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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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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맘 되기 (8) 엄마되기 레벨1, 젖을 물려라

  • 기사입력 : 2015-04-24 08: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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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구글이미지>

    아기는 현실이 됐고,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섰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계별로 산을 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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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단계는 아기 밥 주기, 모유 수유였다.

    산후조리원은 이 과제 해결을 위한 최적화된 장소였다.

    조리원에서의 하루는 모든 것이 젖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기대했던 몸조리는 뒷전이었다.(알았다면 조리원을 그렇게 꼼꼼히 고르지 않았을 텐데.)

    아침은 수유실의 모닝콜로 시작됐다. "아기가 우는데 수유 하실거죠?" 새벽 5~6시부터 전화기는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매번 엉기적거리며 수유실로 향했다. 모성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화기 속 목소리가 "아기가 우는데, 수유 안 하는 나쁜 엄마는 아니죠?"라고 들렸기 때문이다.(조리원 적응 후에는 오전 9시부터 전화를 달라고 부탁했다. 매정한가? 한번 해 보시라.)

    비몽사몽 모닝 수유를 끝내면 식당에 모여 아침을 먹었다. 밥은 가능한 한 많이 먹어야 했다. 잘 먹어야 젖이 잘 돌기 때문이었다. 밥맛이 없다면서도 밥을 굶는 엄마는 없었다. 특히 미역국은 무조건 원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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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숟가락을 놓기도 전에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됐다. 수유실에서 소리쳤다. "고운이 울어요!"(아직 아기 이름이 없어서, 수유실에서는 엄마 이름을 불렀다.) '응애~응애~' 아기는 거의 매시간마다 울었고, 그때마다 나는 '꼼짝마라 수유실행'이었다.

    푹신한 침대와 TV, 쾌적한 휴게실은 모두 빛 좋은 개살구였다. 수유실에는 늘 초췌한 엄마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피곤했다. 늘 잠이 모자랐고, 어깨와 손목이 시큰거렸다. 더 큰 문제는 수유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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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유 수유는 어려웠다. 익히 엄마 선배들에게 예고편을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더 더 험난했다.

    처음 젖이 돌기 시작하면 가슴이 딱딱해지며 통증이 오는데, 이를 풀어줘야 공포의 젖몸살을 피할 수 있었다. 수유실에서는 매일 오후 2시 마사지가 시작됐는데, 엄마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아픔의 눈물을 흘리며 마사지를 받았다.(일부 엄마들은 출산보다 더 아프다고 호소했고, 젖몸살이 심해 병원에 간 엄마도 있었다.)

    젖만 잘 돌면 끝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직수(아기에게 직접 수유하는 것을 말한다)와의 전쟁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는 당연히 젖을 먹겠지라는 생각은 무지한 착각이었다. 조리원 대부분 아기들은 '빨 힘이 없어서', '엄마가 함몰유두라서', 또는 '젖병이 더 편해서' 등 갖은 이유로 엄마의 젖을 거부했다. 엄마들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하루종일 아기를 안고 씨름을 했고, 먹이지 못한 모유는 유축기를 통해 뽑아내 아기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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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원에서는 자연스럽게 '젖을 잘 물리는 엄마', '모유양이 엄청 많은 엄마'가 선망의 대상이 됐다. 나머지는 뭔가 루저같은 분위기랄까. 나는 모유 양이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 유축한 모유를 신생아실에 가져다 줄 때마다 "괜찮아, 점점 늘 거야"라는 위안(?)을 받았다.

    물론 쿨하게 "집에 가면 다 돼, 조리원에서는 내 몸 좀 쉬자"라고 말하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체로 둘째 엄마였다. 초짜 엄마들은 마치 젖 먹이는 것이 일생일대의 사명인 양 피나는 노력을 이어갔다. (실제 많은 엄마들이 유두에 피가 나고 상처가 났고, 어떤 엄마는 밤에도 쉬지 않고 1~2시간마다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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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 모유수유 훈련을 받으면서 몸은 지쳤지만, 아기와 살을 맞대고 있으면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또 아기는 점점 변했다. 눈을 크게 뜨기도 했고, 자면서 배냇웃음을 지었고, 하품을 하고 눈물을 흘렸고, 고양이 소리 같던 울음소리도 점점 우렁찼다. 사랑스럽고 기특했다. 물론 젖을 물지 않겠다며 악을 쓰며 울 때, 젖을 물리고 방으로 돌아온지 10분 만에 울어서 콜을 받을 때는 마냥 예쁘진 않았다. 결국 나는 조리원 입원 기간인 2주 동안 직수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알지 못했다. 조리원 2주의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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