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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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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금연의 속앓이- 이영옥(시인)

  • 기사입력 : 2015-0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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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것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멀리해야 할 때 인간은 고통을 느낀다. 올 새해 첫날처럼 금연 열풍이 거세게 분 적은 없었다.

    금연과 흡연의 득과 실을 따진다면 두말할 것 없이 ‘금연’이다. 하지만 금연이 순수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결단이라면 쓸쓸한 노릇이다. 뛰어버린 담뱃값이 서민가계에 적잖은 부담이 되다 보니 별다른 금연홍보 없이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왔다.

    얼마 전 작가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기로 소문난 백발의 소설가가 추운 골목으로 내몰리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많은 대작을 세상에 내놓아 존경받는 그에게 담배는 단지 기호품이라기보다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글이 풀리지 않아 절벽 앞에 선 기분일 때 깊게 들이켠 담배 한 모금이 글의 실마리를 찾아주며 창작의 고통을 달래 주었을 테니….

    비흡연자로서 끽연의 즐거움을 모르는 내가 느끼는 박탈감이 이럴진대 그들은 오죽할까. 그것도 모자라 사회적 분위기는 점점 흡연자를 기피하게 만든다.

    비흡연자가 담배연기를 마시지 않을 권리가 중요하다면 품위 있게 흡연할 수 있는 애연가의 권리도 중요하다. 환기가 잘되는 흡연실을 먼저 마련하고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것이 순서다. 하물며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내몰란 말이 있잖은가.

    며칠 전 여권 재발급을 위해 방문한 공공기관의 로비에서 시정 정보지를 읽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효과적인 금연정책을 위해 흡연단속 공무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아파트 승강기에도 경고문이 붙었다. ‘계단에서 담배 피우지 마십시오. 적발 시 벌금 10만원’. 이제 이웃들의 따뜻한 눈빛은 CCTV처럼 서로를 단속하고 감시한다. 자율에 맡기면 통제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순간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찬바람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게다.

    내 기억속의 담배 피우는 장면은 고적하고 평화롭다.

    말수가 적었던 할머니는 마음 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큰 소리를 내는 대신 대청마루에 앉아 곰방대로 하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마치 침묵으로 타이르는 화법처럼.

    독한 담배를 태웠지만 아흔이 넘도록 건강하게 사셨고, 그때의 풍경은 신성한 제의처럼 내 안에 고요하게 머물러 있다.

    영화에서 주먹다짐을 한 사내들이 담배를 나눠 피우며 화해하던 멋진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젠 곤고한 삶을 어루만져 주었던 담배와의 애틋한 정을 끊어 내야 한다.

    국가가 국민들의 흡연 욕구를 눌렀으니 우리는 늘어난 세수가 담배연기처럼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금연의 목적이 건강이라지만 금연으로 오는 스트레스의 부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담배 한 대에 온갖 시름을 날려 버리던 국민 정서가 ‘국민건강증진법’이란 이름으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정부가 오로지 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담뱃값을 인상했다면, 이번 기회에 가난한 주머니를 털지 못하게 모두 이를 악물고 금연해 버리면 어떨까.

    이영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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