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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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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무는 바위라는 장애를 끌어안는다- 이영옥(시인)

  • 기사입력 : 2015-01-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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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바위는 앉은 채로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고. 그렇다면 양은 어떻게 도착했을까? 2014년의 청마가 힘겹게 뛰어오는 것을 지켜본 양은 무슨 마음으로 바통을 넘겨받았을까? 우여곡절을 치른 시간이지만 양에게로 넘어왔으니 올 한 해는 평화롭게 지나가지 않을까 예감해본다. 아픔으로 얼룩진 지난해, 그러나 여느 해와 다름없이 제야의 종소리는 울렸고, 백사장에는 해돋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만원이다.

    일 년이란 단위에서 풀려나온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첫경험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항상 새롭다. 갓 태어난 신선한 열정을 정형화된 구조물 안에 가두는 것은 발전을 훼방하는 크나큰 해악이다. 옳다고 생각했던 이념도 변해 누군가의 고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자리 비우는 일에 바빴다. 그런 연유로 미래란 살기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고 이제껏 믿어 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세월호 참사는 모든 것을 뒷걸음치게 했다. 그 끔찍한 슬픔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족을 직접 잃은 당사자건, 두 눈을 뻔히 뜬 채 구조의 손길을 건네지 못하고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낸 국민이건 마찬가지다. 아픔을 준 이들은 지금까지 침몰의 이유만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을 뿐, 왜 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은 주지 않았다.

    ‘땅콩리턴’의 소식이 연일 보도되는 우울한 연말에 그나마 ‘MBC 연기대상’에서 최민수씨가 수상 거부를 했다는 소식은 청량했다. 그는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특히 작년에 많이 경험했던 것은 위기의 상황에서 제 잘났다고 떠드는 집단보다 침묵이 속 깊은 대화처럼 위로가 됐다. 기울어가는 배 옆으로 구조선 한 척도 얼씬하지 않았던 그 무서운 적막은 아직 팽목항에서 저토록 목젖이 보이도록 입 벌리고 있지 않은가.

    양은 순하지만 의리가 있고 영민하다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유능제강 (柔能制剛)이란 말이 있다. 나무는 인간보다 지혜로운지 뿌리를 내릴 때 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눈앞에 놓인 장애를 힘껏 껴안아 그 힘으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처럼 힘없는 자들의 희망이다. 그것이 화합이든, 소통이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위안이든.

    우리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궁에 빠진 것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진실의 매력은 고통을 단지 고통으로 끝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상이 단 한 번도 무서웠던 적이 없었던 재력가의 자제가 제 마음대로 비행기를 돌린다 해도 한 걸음만 비켜서면 ‘선’을 좇는 장삼이사들은 약자의 편에서 아무 대가 없이 정의를 위해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니 새해는 양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걸음으로 벽을 넘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첫 번째로 여기는 2015년이길 간절하게 염원해 본다.

    이영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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