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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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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나만의 술로 건배!" 전통주 빚기

술이 술이 마술이~ 술이 돼라 얍! 나만의 맛있는 술로 건배!
잘 띄운 누룩 시중에서 구하기 쉬워 술 빚기 초보자도 도전할 수 있어요
덧술 없이 한번에 걸러내는 단양주는 2~5일 만에 완성

  • 기사입력 : 2014-12-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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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성산구 내동 현대상가 ‘참살이전통주학교학습관’에서 조정희(왼쪽에서 두 번째) 관장과 수강생들이 직접 빚은 다양한 전통주를 들어보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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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살이전통주학교학습관 수강생들이 빚은 다양한 전통주. 다양한 색깔만큼이나 맛고 향도 다르다.


    2014년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에 연말 모임 메모가 빼곡하다. 동문회, 직장, 거기다 이러저러한 의리로 맺어진 모임의 송년회가 쉴 틈 없이 빡빡한 연말을 예고한다. 나를 알아주는 벗을 만나 한 해를 되새김질하는 뜻깊은 모임이라면 ‘에고, 어쩌노?’ 하는 한숨은 안 나와야 하는데, 해마다 이때가 되면 각종 송년모임이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2014년, 너를 몇 번이나 보내야 되는 거야?’ 손가락을 꼽아 세어 보면서 꼭 참석해야 할 자리, 슬쩍 빠져도 될 자리를 계산도 해본다.

    웬만하면 송년회 횟수를 줄이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놈의 술 때문이다. 송년회 모임에 빠지지 않은 ‘한잔’이 결국 한 잔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한바탕 웃음을 줄 수 있는 유행성 건배 제의도 준비하고, 흥이 올라 순번이 돌아오면 한 가락 뽑을 준비도 해야 한다. 숫기 없어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일종의 스트레스이다. 또 모임 다음 날 숙취는 정말 괴롭다. 연이은 모임에 연이은 숙취를 떠올리면 몸은 이미 곤죽이 된 듯한 기분이다. 콘서트나 공연을 보는 문화 향유형 회식과 오찬 회식 문화가 생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 우리는 여전히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을 최고의 오락으로, 위안으로 삼는 민족이다.

    그렇게 끊어버릴 수 없는 모임의 술이라면 천편일률적인 맛의 시판주를 내려놓고 직접 빚은 다양한 맛과 빛깔의 전통주로 분위기를 띄워보는 건 어떨까? 첨가물 없이 발효와 증류를 통해 익힌 우리 전통주는 뒤끝 없는 쿨한 매력도 있다. 잔을 들고 향을 맡고 맛을 보고, 담그는 과정과 술맛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으며, 색다른 송년회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막걸리로 알려진 단양주(單釀酒) 정도면 2~5일 만에 완성할 수 있다고 하니 다가오는 송년 모임에 선보일 ‘나만의 특제 술’로 시도해 볼 만하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주재료로 해 전통적인 양조방법에 따라 고유의 맛과 향, 색이 나도록 만든 술을 전통주라고 한다. 집에서 빚는 술이라 해서 가양주(家釀酒)라고도 한다. 대형 양조장을 통한 시판용 술이 나오기 전에는 제사를 비롯한 집안의 대소사에 쓸 술로, 혹은 노동의 힘겨움을 이기게 하는 농주로 지역마다 다양한 재료의 전통주가 있었다. 손끝 야무진 여인네들이 메주 띄우듯 공들여 누룩을 띄우고, 아랫목 한쪽을 술항아리에 내주면서 빚었다. 명절이면 동네 어느 집 술맛이 있네 없네 품평하는 어른들의 입담도 제법 구수했다.

    지난 4일 첨가물 없이 전통 발효식으로 술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참살이전통주학교학습관’(창원시 성산구 내동)을 방문했다. 학습관 내부는 16명의 수강생들이 직접 만든 24가지 술이 은은하게 퍼뜨리는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초보자도 술 담그기에 도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요즘은 누룩치 없이 잘 띄운 누룩을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물과 쌀만 있으면 누구나 해볼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해준다.

    “할머니가 담그신 술로 모내기나 타작 때 시원하게 한 잔씩 마시고 배를 채우던 기억이 있어요. 술을 담그면서 그 시절 추억을 많이 떠올립니다. 할머니의 그리운 손맛이 나는 거 같아서 힐링이 됩니다.”

    수강생 중 최고참이라는 육근덕(63·함안군 가야읍)씨는 퇴직 후 집에서 혼자 술 빚기를 해오다 제대로 한번 배워보고 싶어 강좌에 참여한 전통주 예찬론자이다.

    ‘푸드 테라피’라고 술 빚기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황경임(55·창원시 성산구 남양동)씨 역시 동료 수강생들과 소통하면서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전통주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서두르는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고, 자주 들여다보면서 살아 있는 생물 다루듯 아끼고 보살필 수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해볼 수 있어요.”

    영남대 상담심리학과 교수인 조정희 관장(58). 사실 불어불문학이 학부 전공으로 프랑스 와인이 어울릴 법한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조 교수는 전통주 빚기를 배우고 전수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면서 어린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함안 군북에 있던 외가의 양조장에서 술 담그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가양주를 담그는 어머니 모습도 눈에 선하고요. 술 빚기가 저한테는 특별한 일이 아닌 셈이지요. 심리치료, 예술철학 등을 공부하다 보니, 술이 사람 간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직접 빚으면서 그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연하게 느낍니다. 우리가 술 빚는 모습을 지켜보시면 이유를 아실 거예요.”

    곧 조 교수와 수강생들이 김이 오르는 찐 고두밥을 널어 식히고, 불린 누룩을 섞어 40여 분간 손으로 주물러 섞는 작업을 한다. 사람의 체온과 치대는 동작으로 발효가 잘 되게 하려는 것이다. 혼자 그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둘러서서 같이 수작업을 하다 보니, 편안히 서로를 대하게 되면서 정(情)이 들 수밖에 없을 것같다. 조 교수가 말하는 ‘소통’이 쉽게 이해되는 순간이다. 손빨래 하듯 섞어 치댄 누룩과 고두밥을 항아리에 안치고 생수를 부으면 1차 술 담그기가 끝난다. 간단하기 그지없다.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하자 수강생 모두가 허허허 웃어젖힌다.

    “옛날 가양주 담그듯이 직접 누룩을 만들지 않는 것 빼고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청결입니다. 손, 그릇, 항아리까지 모두 소독해야 돼요. 용기를 삶으면 더 좋고, 에틸알코올로 손까지 깨끗하게 씻은 후 술 담그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잡균이 들어가면 술을 다 버리거든요. 그리고 누룩과 쌀을 잘 불려야 합니다. 찹쌀, 맵쌀에 따라 불리는 시간이 다르고, 누룩도 따뜻한 물에 잘 불려서 미생물을 미리 깨워 놓아야 발효가 잘되고 술맛이 좋아집니다. 단계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요.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거든요.”

    그렇게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술맛이 우리 전통주의 무한 매력이라고 말하는 조 교수는 손이 따뜻하고 꼼꼼한 사람이 빚은 술이 맛있다고 귀띔했다. 맨손으로 작업해서 체온이 균주에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수강생들의 작품인 술항아리들 사이에 ‘사랑해’라는 노란 딱지가 붙어 있는 항아리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술 익는 과정 내내 신경 써서 챙겨야 맛있는 술이 탄생하므로 누군가 기발하고 유쾌한 의미의 상표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온도 유지를 위해 담요나 깔개를 항아리 받침대로 놓았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챙겨야 될 게 많기도 하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있는 날, 각자 자기 술항아리에 손을 넣어 아래와 윗부분을 뒤섞어 발효가 빨리 되도록 한다. 새 고두밥을 덧술로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덧술 없이 한 번에 걸러내면 단양주, 덧술 과정을 한 번 거치면 이양주, 이양주에 덧술 작업을 한 번 더 하면 삼양주가 된다. 도수가 높아질수록 오래 저장할 수 있고 향미도 좋아진다니 좋은 술맛을 보려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수업도 해야 한다.

    단양주든 이양주든 거를 때는 대나무살로 엮은 용수를 쓴다. 술 항아리에 용수를 넣어 술지게미를 떠오르지 않게 눌러서 맑은 술만 쪽자로 떠낸다. 용수가 일종의 프레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색색의 술이 잔에 따라지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일순 진지해진다. 단양주인 찹쌀막걸리, 거기에 오미자, 포도, 모과, 상황버섯 등으로 약성과 향을 더한 가향주까지 고운 색깔의 술 작품 한 상이 멋지게 차려졌다. 술맛을 보며 개인적인 평가가 오간 후 취재진에게도 자신들의 술을 한 잔씩 권한다. 흔히 가정에서 담그듯이 과실주용 쓴 소주를 쓰지 않고 발효만으로 빚어진 술들이어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퍼지는 향이 입맛을 자극하며 기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남자들은 다 자기만의 술을 갖고 싶은 로망이 있어요. 맛이 있든 없든 ‘나만의 술’이잖아요.”

    박대성(49·창원시 의창구 용호동)씨는 사서 마시는 술이 거의 비슷한 맛이어서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담글 때마다 다른 맛을 내는 자신의 술이 신기하단다.

    ‘우리 술이 우리 체질에 맞다’는 강재만(53·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씨도 “직접 담근 술을 친구들과 나눌 때의 기쁨은, 해본 사람 아니고는 모른다”며 시음 잔에 안주까지 내밀며 권해서, 구경꾼처럼 섞여 있던 취재진을 대번에 친구로 격상시켜 학습관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든다.

    황숙경 기자 hsk8808@knnews.co.kr

    도움말= 조정희 참살이전통주학교 교수(dallai56@naver.com)



    ★나만의 단양주 빚기

    △준비물-찹쌀 또는 맵쌀 5㎏,누룩 1㎏, 생수, 항아리 등 용기

    △만드는 법

    1. 찹쌀을 깨끗이 씻어 3시간 정도 물에 불린다. 맵쌀일 경우 7시간~8시간 불려야 한다. 불린 후에는 1시간 정도 물기를 빼준다.

    2. 누룩에 25도가량의 미지근한 생수 3ℓ를 부어서 7시간 담가 수곡과정을 거친다. 빨리 발효시켜야 되는 단양주의 특성상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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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불린 찹쌀을 면보를 깐 찜솥에 40분간 찌고 20분간 뜸을 들여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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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수곡된 누룩을 면보에 걸러 식힌 고두밥과 섞는다. 밥알이 들러붙지 않도록 40분 정도 손으로 치댄다.

    5. 항아리에 담아서 생수 7ℓ를 붓고 30도 전후의 온도를 유지하며 발효시킨다. 담요를 덮거나 전기요, 전기방석 등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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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뽀글뽀글 개는 상태를 살피면서 하루에 한 번 정도 아래 위를 손으로 뒤섞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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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일에서 3일 정도 발효 후 밥알이 가라앉으면 걸러서 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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