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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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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결과없는 과정, 목적없는 상태로서의 예술- 성윤석(시인)

  • 기사입력 : 2014-10-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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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부두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설치미술가 한 분과 큐레이터 한 분이 찾아왔다.

    그 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 소개로 전화가 와 인사를 나누고, 시장의 소음 속에 방문 취지를 들었던지라, 사전에 구체적인 언질이 없어 자리를 같이하고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던 터였다.

    두 분은 먼저, 찾아온 취지가 ‘사라지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것이었고, 자유롭게 한 세 시간 말을 하면 녹음해 가겠다는 것이었다. 녹음을 한 내용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

    두 분은 우선 공동묘지나, 한강대교, 난곡 비슷한 산동네 같은 동네를 선정해서, 반경 600m 안에만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을 기획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딱 6일만 살아있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거였다.

    즉슨, 나타났다 사라지는 라디오였다. 들어보니, 게릴라적인 퍼포먼스였고 흥미로운 시도라 여겨졌다.

    이를 위해 라디오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서, 이 방송을 듣기 위해 찾아올 600m 안의 청중들에게 나눠 줄 계획이라고 하는 부분에 가서는 신이 나기까지 했다. 어쨌든 사라지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므로.

    이 퍼포먼스는 서울의 한 문화재단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아 시작됐다고 했다.

    그날따라 나는 입이 쉽게 터졌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세 시간 동안이나, 아마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한 것과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다 망한 뭐, 그런 얘기들로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녹음을 마치고 두 분이 떠난 뒤 나는 부두에 앉아 자괴감에 빠졌다. 이 퍼포먼스의 가치는 무엇인가. 왜 이런 작업들을 하는가, 이런 작업을 통해서 두 분이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조차 못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뒷머리를 땅, 하고 때리는 어떤 울림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10여년 동안 버렸던 문학을 다시 들고, 나는 지금 무얼 하려고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었다. 그날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시가 한 권 분량 정도 모이면, 시집을 내야 한다는 생각까지 아둔해 보였다.

    그후 추석 때 서울 올라갈 일이 있어, 두 분 중 큐레이터 한 분을 여러 지인들과 같이 만났다. 그날 나는 마산에서 묻지 못했던 질문을 할 참이었는데, 갑자기 내 지인인 건축가이자 시인인 분과 큐레이터 두 분 사이에서 논쟁이 시작됐다

    내 지인은 그런 사라지는 라디오 방송이면, 방송이 송출되는 지역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내 지인은 이왕이면 제주도 강정마을이나, 광화문, 밀양 송전탑 같은데서 해야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그 근거로 내 지인은 모든 예술은 노출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큐레이터의 대답: ‘결과 없는 과정, 목적 없는 상태로서의 예술도 어딘가에 있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마산 부두에 이어 두 번째로 내 뒷머리를 땅, 하고 울리는 말이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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