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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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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공짜로 드립니다- 김영혜(수필가)

  • 기사입력 : 2014-09-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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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일! 할인! 마트건 백화점이건 이런 행사에는 예외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할인하는 품목들은 생활에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있으면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이게는 할지 모르나 없다고 크게 아쉽거나 불편한 것들이 아니다. 옷이라면 어제도 입었고, 지금도 입고 있고 내일이라고 옷장의 옷들이 없어지겠는가. 그런데도 ‘30% 할인’이라면 눈길이 간다. 쌓아둘 창고도 없으면서 ‘1+1’이라면 횡재라도 한 양 무겁게 사들고 온다. 하여 입을 옷은 없건만 옷장은 가득하고, 냉장고는 인류 마지막 날을 준비하듯 꽉꽉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살기가 어렵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면서 정작 공짜로 주는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4분 동안만 마시지 않아도 죽게 되는 것이 공기지만 아무도 ‘돈 내라’ 하지 않는다. 그 귀한 것을 공짜로 주건만 어느 누구도 ‘고맙다’ 인사하지 않는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흉내 내는 음악회에는 비싼 입장료가 요구되지만 실제 새의 노래, 물방울의 울림은 모두 무료다. 꽃을 피우는 햇살도 공짜고, 아름다운 노을도 공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짜로 주어지는 이것들이야말로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이다. 생명을 키우는 것들은 이렇게 세일도 할인도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짜로 주어진다. 그런데 살기 어렵다고 울상일 이유가 있겠는가. 언제든 가질 수 있는데 쟁여둘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사람은 또 어떤가. 하루치 신문만 보아도 세상은 잘난 사람, 특별한 사람, 똑똑한 전문가들로 넘쳐흐른다. 어느 구석 한 자리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TV를 볼 때마다, 신문을 읽을 때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에서 소외된 듯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이 불쌍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세상은 그런 잘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일까. 교육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미래를 위한 교육이론이라고 대단한 논문을 발표해도 그들은 아이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이들을 키우고, 행복하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것은 나와 내 이웃인 엄마와 아빠들이다. 아이를 위해 새벽부터 부엌에서 토닥거리는 엄마의 부지런함이고, 붐비는 통근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아빠들의 잰 발걸음이다.

    경제전문가들이 내년 경제를 걱정하고, 정치가들이 나라의 앞날을 저울질해보지만 정작 그들이 내일을 만들지는 못한다. 미래는 자갈밭 돌멩이처럼 흔한 보통사람들의 오늘이 열어가는 것이다. 너무나 흔해서 나 자신조차도 잊고 있었던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힘이 모여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진부한 얘기라고? 그렇다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하면 세계 경제가 걱정될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을지.

    자! 공짜로 드립니다. 너무나 귀해서 값으로 매길 수 없고, 너무나 흔해서 값을 정할 수 없는 목숨과 행복의 필수품들을 받아 가세요. 생명의 필수품인 공기도, 햇살도, 비도, 바람도 공짜입니다. 행복의 필수품인 아이들의 재잘거림, 이웃들의 미소, 따뜻한 위로도 무료로 드립니다. 수량제한, 자격요건도 없습니다. 줄을 설 필요는 더욱 없습니다. 마음껏 가져가세요.

    김영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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