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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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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권할 수 없는 낙- 김이듬(시인)

  • 기사입력 : 2014-09-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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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로 여행 다녀온 시인을 만났다. 그가 현지에서 산 담배 몇 갑을 내밀었다. 그 담뱃갑을 보는 순간, 끔찍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사망 직전의 남자 사진, 피고름 나는 잇몸에 썩어빠진 치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이 아찔해서 도저히 그 담배를 받을 수 없었다.

    반면 KT&G에서 생산 유통하는 담배들은 디자인이 세련되고 색깔도 예쁘다. 박하향, 헤이즐넛향 등 맛과 향도 다채로워 여성이나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한때 국산 시가형 담배나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이 갑에 그려진 담배를 피운 적도 있다. 지금은 금연을 고려 중이다.

    담배는 백해무익하다. 흡연자는 내 주변에서 줄어들고 있다. 우리 집안에서 흡연자는 나 혼자고 출강하는 대학 국문과에서도 담배 피우는 선생은 나와 장모 교수(그는 시인이다), 둘뿐이다.

    여자가 담배 물고 있는 게 눈에 띄면 곤란하기 때문에 난 가끔 실례를 무릅쓰고 장 교수의 연구실에서 급히 몇 모금 음미할 때가 있다.

    어제 오후, 둘이 끽연하다 내가 입을 뗐다. “이젠 끊어야겠어요. 담뱃값이 대폭 오른다니…. 근데 2006년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담뱃값 500원 인상하려 했을 때 한나라당에서 성명서까지 내며 ‘서민들의 고혈을 짜서 세수를 확보하려는 작태를 막아야 한다’고 난리더니, 이번엔 그들이 무려 2000원씩이나 올리며 국민건강 증진이니 생명이니 떠들어. 쳇! 수백 명이 죽어가도 책임의식 못 느끼는 정부가…”, “내년에도 제가 매일 한 갑씩 피운다면, 담배로 내는 연간 세금은 121만원이 넘는다죠. 7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내는 재산세와 같대요. 대기업에 대해 면세, 감세한 세금을 어떻게든 충당하려는 거죠. 아니까, 끊긴 끊어야 하는데, 원고라도 쓰다 보면 자꾸 담배에 손이….”

    작가들 중엔 흡연자가 많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술 담배에 찌들어 산다는 편견이 없지 않다.

    파리 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윌리엄 포크너는 말한다.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유일한 환경은 평화, 고독, 너무 비용이 들지 않는 즐거움뿐입니다. (중략) 제 경험으로는, 제 직업에 필요한 것은 종이, 담배, 음식과 약간의 위스키뿐입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흡연자의 교육 수준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가 흡연율이 가장 낮고 경제적 빈곤층일수록 흡연율이 높다고 하는데, 작가들은 어디에 속하는가? 요즘엔 작가들이 담배연기 자욱한 주점에 모여 빈 소주병을 쌓아가며 밤새 마시는 경우는 드물다.

    젊은 작가들 중엔 피부가 뽀얗고 얼굴에 은은한 광채가 나는 시인도 많고 흰 와이셔츠에 말쑥한 소설가도 적지 않다.

    그 친구들 대다수는 담배 연기를 싫어하고 몸 망쳐 가며 술 마시기보다는 시간을 아껴 창작한다.

    이제 이 원고의 마침표를 찍고 담배 한 개비 피워야겠다. 한숨 쉬듯 연기를 뿜으며 마음을 열고 환기해야겠다. 이웃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건 나의 은밀하고 소박한 낙이다.

    김이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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