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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들- 조재영(시인)

  • 기사입력 : 2014-09-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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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명절이면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난다.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교통상황을 전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아마도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신기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이날에는 모여야 ‘가족’이라고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

    벌써 작년의 일이다. 같이 영화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지인들과 영화 관련 도서를 집필하게 됐다. 인문학이라는 기본 단서가 있었지만 영화를 소재로 한 책이라 산책하듯이 가벼운 느낌으로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우리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랜 토론을 벌여 몇 가지의 영역을 얻었는데, ‘가족’의 문제가 가장 중심이 됐다. 참으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이야기고, 가족 이야기였다.

    내가 집필을 맡은 한국영화에서도 가족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게 드러나 있었다. 문학도 그러하지만 영화도 삶과 당시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해방 이후의 가족 소재 영화들 중에서 눈여겨본 영화는 60년대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70년대의 <홍살문>이었다. 이 두 영화의 시대에는 전통적인 가족관이 중심이 되던 시기였다. 그러니 혈연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친밀해도 제도적인 인정을 받은 가족이 아니면 가족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길동의 시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높은 가족의 관습이 유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한국형 멜로 드라마의 완성작이라고 불리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불행해지는 사람은 제도적 가족 관계에 속하지 못한 여인 ‘혜영’이다. 당시의 신문 기사 그 어디에도 혜영이 불행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내용은 없다.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심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고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가족’의 의미도 크게 달라졌다.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가족이 아니라도 가족 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 같을 때가 있고, 가족이지만 남과 같을 때가 생긴다. 김태용 감독은 영화에서 이런 시대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근래에 여배우 탕웨이와 결혼을 해서 화제가 됐지만, 그 이전부터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영화를 여러 편 만들어서 주목을 받았다. <가족의 탄생>은 그 정점에 있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법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같이 밥을 먹고, 사진도 찍고, 김장을 하는 ‘가족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가족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도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히’ 가족으로 합류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남겨 준다.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교통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다. 평소에는 서로 연락도 잘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명절이 돼서야 비로소 가족으로 돌아온다면 타인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배려일 것이다.

    조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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