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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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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부드러운 물의 강한 힘을 겪으며- 김영혜(수필가)

  • 기사입력 : 2014-08-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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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리는 물보라는 진군하는 군대의 발걸음에서 피어나는 먼지구름 같았다.

    삽시간에 불어나며 이곳저곳 길을 막아서는 서슬에는 적군에게 포위된 듯 어디로 가야 할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모두들 걸음을 재촉했다. 집, 차, 콘크리트 그런 것들이면 안전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두어 시간의 비에 우리의 이런 믿음은 무너져 내렸다. 거리가 물에 잠기고, 차가 떠내려가고, 담이 무너지고, 결국에는 인명피해마저 발생해 우리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여리고 부드러운 빗방울이 모이면 얼마나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는지. 물이란 아래로, 바다로 흘러가기 위해 어떤 장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빗물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흙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단단하던 땅을 무르게 만들었다. 그러니 누가 떠밀지도 않았건만 키 큰 나무들이 제풀에 쓰러졌다. 땅이 물러지니 그 위에 쌓였던 돌들이 굴러 떨어지고, 그 돌 옹벽이 막고 섰던 흙들이 지붕 위로 자동차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몇 십 톤씩 짐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을 견디던 도로도 아스팔트 밑으로 스며든 빗물에 흙 알갱이들이 쓸려가며 속이 비며 풀썩 주저앉았다.

    이 모든 것들이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에 걸쳐 진행된 것이 아니라 두어 시간의 빗줄기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그저 개울을 만들고, 하수도를 놓으면 물은 그 길을 따라 잘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집을 지을 때 옹벽만 잘 만들면 안전하리라 여겼다. 돌을 쌓고 콘크리트를 바르면 그 단단함으로 도시며 아파트는 안전할 것이라 믿었다. 여리고 부드러운 것들에 숨겨진 엄청난 힘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무시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그 무섭고 가슴 아픈 일들이 기억이 돼 가고 있다. 물에 잠겼던 거리는 어느새 물이 빠져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기계의 굉음과 함께 쌓였던 흙더미가 사라지고 부서진 자동차들도 어디로 끌려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머지않아 다시 언덕에는 옹벽을 쌓고 콘크리트를 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그 단단함에 안심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옹벽을 쌓고 길을 닦고 개울을 만드는 일을 잘 모른다. 공법도 모르고 자재도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것이 좋은지 모른다.

    하지만 바라는 바는 있다. 그런 일을 할 때 제발 자연스럽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만들고 자연이 따르기를 바라지 말고 그들의 흐름을 이해하고 막지 않는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기를 바란다. 꼭 막아야 한다면 여기저기 물이 흘러나올 수 있는 부분은 남기고 막았으면 한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숨통은 트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드럽고 여린 것들 속에도 엄청난 힘이 있음을 희생과 가슴 아픔으로 뼈저리게 겪은 며칠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재해가 처음도 아니었으며 마지막도 아닐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과거에 겪었으면서 준비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아픔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미봉책으로 눈가림만 하고 넘어간다면 또 다른 슬픔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런 가슴 저린 일들을 겪지 않도록 제대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근본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김영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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