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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관계의 미학 ‘웃음’- 차민기(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4-02-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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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주대첩(권율)은 한산대첩(이순신), 진주대첩(김시민)과 아울러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1만 남짓의 군관민을 모아 3만의 왜병에 맞서 적을 크게 물리친 권율은, 이때 나이 쉰여섯이었다. 마흔여섯에 과거에 급제했으니 벼슬길에 나간 지 꼭 10년 만의 일이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오성 이항복은 권율의 사위이다. 이항복의 여러 일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옆집 담을 넘어간 감나무 가지’ 사건일 것이다. 이항복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옆집 하인들의 부당함에 맞서 자신의 소유권을 당당히 주장하고자, 권문세가의 방문을 주먹으로 뚫을 정도로 기개가 있었던 인물이다. 그때 그 옆집의 권문세가가 바로 당대 영의정이었던 권철, 즉 권율의 아버지였다. 권철은 이때 어린 이항복의 기개에 탄복해 뒷날 권율에게 이항복을 사위로 삼으라고 권했다.

    권율이 관직에 들고부터 두 사람은 함께 조회에 임했는데, 그때 이미 조정의 중신이었던 이항복은 장인을 골려 먹는 일로 여러 번 재미를 보았다. 한번은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느닷없이 이항복이 선조에게, 날씨가 무더우니 관복을 벗고 조회를 하자는 청을 올렸다. 선조는 흔쾌히 청을 받아들여 모두가 관복을 벗는데, 유독 권율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선조가 재차 명을 내리자 권율은 할 수 없이 관복을 벗는데 그 속차림이 베잠방이뿐이었다. 부친이 영의정을 지낼 만큼의 권문세가에서 자랐지만, 권율은 평소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아 늘 베잠방이 위에 관복을 받쳐 입었던 것이다.

    장인이 평소 검소해 내의를 따로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항복이 장인을 골리고자 일부러 그러한 청을 올린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속옷 차림이 돼버린 권율로 인해 조회장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됐지만, 권율은 사위를 나무라기보다는 사위의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함께 웃으며 즐겼다. 선조는 그 일로 권율의 검소함을 높이 사 비단과 무명을 하사했다.

    이 밖에도 권율과 이항복의 여러 일화들은 행주대첩의 맹장이었던 권율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한참 어린 사위와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격의 없는 친구처럼 서로 골탕 먹이며 함께 웃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맹장으로만 알고 있던 권율이 한결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웃음’은 동물과 구별되는 사람만의 행위라고 한다. 동물들도 감정을 나타낸다고는 하나 기쁨이나 즐거움을 웃음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흔히 ‘소가 웃겠다’는 표현을 쓰곤 하지만, 실상은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고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돼지머리도 웃는 상을 하고 있어야 비싸게 값을 받을 수 있다. 웃음이 만복의 기본이라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반영된 까닭이다. 그 때문에 우리말에는 예로부터 웃음을 일컫는 말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들만 가려보면, ‘조소’, ‘냉소’, ‘비소(誹笑)’, ‘미소’, ‘폭소’, ‘파안대소’, ‘홍소(哄笑)’들이 있다. 조소와 냉소, 그리고 비소는 타인에 대한 반감이 전제된 웃음이다. 미소와 폭소, 파안대소는 기쁨의 정도에 따라 나뉘는 웃음이다. 홍소는 여럿이 함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웃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웃음들이 예술로 옮겨지면 풍자와 해학의 ‘골계미(滑稽美)’를 이룬다.

    예일대학 심리학 교수인 마리안 라프랑스의 ‘웃음의 심리학’이 지난해 우리말로 옮겨져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은 원시 인류에서부터 현 인류의 웃음, 아기에서부터 엄마의 웃음, 남자와 여자의 웃음, 심지어 트랜스젠더의 웃음들까지도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해 웃음이 지닌 사회문화적 맥락을 재미있는 본보기로 설명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책의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루에 몇 번의 미소를 짓고, 일주일에 몇 번의 폭소를 터뜨리는가?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다면 그 사람의 행복지수는 결코 높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웃음’은 관계 맺기의 가장 경제적인 가치 재화이다.

    차민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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