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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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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87) 황강 35 합천군 적중면 월화당~저존재

솟을대문 너머, 학문 닦던 선비의 정신이 머물러 있다
문화재 만나러 양림리 향하는 길 들녘과 습지엔 가을정취 물씬
‘월화당’은 조선 중기 학자 노극복이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닦았던 곳

  • 기사입력 : 2013-09-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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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군 적중면 양림리 마을 월화당의 솟을대문.
    월화당(앞쪽)과 주필각.
    저존재 솟을대문.
    상부 습지.
    저존재.
    감로사 종각.
    두방마을 전통 담장.



    올여름 폭염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들판의 벼가 누렇게 옷을 갈아입고 텃밭에는 김장배추, 무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세상은 어수선해도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화를 거듭해가고 있다. 사는 이유와 목적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인 가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가치도 시대와 사람에 따라 변화하고 달라지겠지만 기본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진정한 행복을 생각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바빴던 일상에서 멀어져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서 여유와 자유가 생긴다. 그래서 여행길에 자가용 타고 가는 것보다 버스를 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면 더 많은 행복의 가치를 만나게 된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보면 걷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가끔 자동차를 한적한 시골마을 버스 정류장에 두고 걸어서 답사하기도 한다. 걸어서 여행을 하면 예전에 보이지 않던 꽃과 나무, 담장을 오르는 담쟁이 넝쿨에서부터 호박꽃, 진한 노란색의 수세미 꽃, 동네 강아지까지도 반겨준다. 마을 담장에 우두커니 기대어 있는 참깨단도 정겹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도 고향분들처럼 반가움이 가득하다. 여행과 아름다운 가을이 주는 행복이다.


    ◆적중면 가는 길 주필각과 월화당

    고속도로 창녕나들목에서 우포늪을 지나 낮은 산과 들판의 행복한 어울림이 있는 길을 찾아가면 넉넉한 어머니 품처럼 다가오는 낙동강 적중교. 넓은 낙동강을 건너면 합천 땅이다. 낙동강변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4대강 자전거도로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초계면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적중면으로 들어섰다.

    문화유산 답사는 동선을 잘 정해야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고 같은 길을 반복해서 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혁명과 공업 발전으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고 농촌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농촌인구는 줄어들고 젊은 층이 없어 아이 울음소리가 끓어진 지 오래된 곳도 있다. 농업이 기계화되는 바람에 쟁기를 지게에 지고 소를 몰고 가는 풍경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농촌 들녘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합천군 적중면사무소에 들어서니 이차수 애향비가 오래된 정자나무 곁에 서 있었다. 당직 근무를 하던 최낙윤(60) 씨가 반겨줬다. 고향이 인근 쌍책면이라는 보건소 박중숙(53) 씨는 답사 여행의 동선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동선은 물론, 쌍책면 진정마을의 열녀문도 문화재는 아니지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일러주었다. 적중면 문화재를 답사하고 쌍책면 가면 찾아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월화당이 있는 양림리로 향했다.

    마을길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들판은 벼가 색칠하는 캔버스처럼 변하고 있었다. 상부 작은 습지에는 목이 긴 두루미가 한가롭게 거닐고 있고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 속에서 연꽃이 예쁘게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양림리 마을 입구에 솟대와 장승이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고 있고 부근에 주필각과 월화당이 있다.

    월화당은 노극복이 한양에서 낙향해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던 곳이다. 합천의 전설과 설화(박환태 편저, 2008년 8월 1일, 합천문화원)에 의하면 인조가 임금으로 등극하기 전에 스승 심광세에게 우리나라의 최고 도덕지사가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심광세는 주저없이 노극복을 세상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할 경륜과 덕망을 갖춘 도덕군자라고 대답했다.

    인조가 대군 신분으로 노극복을 찾아 합천으로 내려와 찾아가던 중 지척을 구분할 수 없는 날씨 속에서 일행이 월화당에 도착하니 날씨가 밝아졌다고 한다. 인조대왕 일행은 노공의 학덕에 탄복했고 검은 구름이 걷히고 밝은 달이 나타났다고 해 거처하던 집을 월화당이라 하고 선생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노극복은 조선 중기 학자로 어려서부터 문예가 뛰어났으며 성리학을 깊게 연구했다. 인조 즉위 후 벼슬에 올랐으나 학문에 뜻을 두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했다.

    월화당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 팔작지붕으로 숙종 21년(1695년)에 후손들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주필각은 월화당 뒤쪽에 있는 작은 건물인데, 인조가 말을 매어 놓았던 곳이라고도 하며 역마가 머물던 곳이라고도 전한다.

    주필각과 월화당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어 먼 길을 왔는데 들어가보지 못했다. 마당에는 농작물이 잡초처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솟을대문에 관리인의 연락처를 표시해 놓으면 방문객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월화당에서 고개를 돌리니 평지에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은 절집이 숲 사이로 보여 찾아가 보았다. 일주문이나 절의 이름을 새긴 현판은 없고 후원 공덕비에서 감로사라는 이름만 찾았다. 깨끗한 경내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주인인 양 피어 있고 대웅전과 종각, 요사채가 조촐하게 있었다. 인기척은 없고 요사채 문에 ‘합천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문이 굳게 잠겨 있는 월화당 문화재 관리보다 작은 절집이 방문객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넓다는 생각을 하며 좁은 농로를 따라 저존재로 발걸음을 향했다.


    ◆두방 전통 돌담, 저존재

    두방마을은 월화당으로부터 들길을 따라 10리쯤 떨어진 미타산 아래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탐진 안씨 일가가 터를 잡은 집성촌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마을 이름이 머리방이었는데, 일본인들이 격을 떨어뜨린다고 말방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이 옛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해 1995년 두방으로 바로잡았다고 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전통돌담마을’이라는 안내표지가 있었다. 합천군은 2009년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 대상지로 두방리 전통 돌담 복원 사업을 선정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었다. 한적한 마을 한편에서 중장비 소리가 나고 돌담을 쌓는 손길이 분주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두방마을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곳곳에 보였다. 전통 돌담 복원 사업이 이어지고 있으니 사람들이 북적대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존재를 찾아 마을 안길을 따라가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수문장처럼 반겨준다. 저존재는 노계 안우가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학문을 하던 곳이다. 성종 19년(1488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05년에 후손들이 사당을 지어 편액을 저존재라 하였다.

    건물의 전체 배치는 미타산을 뒤로하고 북향이다. 전체를 방형의 담장으로 둘러쳐 대문이 잠겨 있으면 요새가 되어버려 들어갈 수가 없다. 큰 자물쇠로 굳게 잠긴 솟을대문에 관리인의 연락처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담장 밖에서 기웃거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요즘 일부 몰지각한 도둑들이 문짝까지 떼어가는 바람에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먼 길을 왔다가 그냥 돌아서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남았다.

    저존재의 공간 구성을 살펴보면 전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서쪽 2칸에 1.5칸의 깊이를 가진 큰 방을 두었는데, 전면은 퇴를 두었고 두 방은 미서기 문으로 구획했다. 동쪽 끝 한 칸의 전면은 누마루를, 후면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중앙의 대청마루는 4칸의 넓은 공간으로 구성했다. 방의 후면에는 모두 벽장을 두었다. 경사지에 기단을 쌓아 건축하였고, 호박돌 초석에 전면과 후면의 기둥은 원형으로 세웠다.

    (마산제일고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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